◆ 풍차는 여전히 돌고 나그네는 짐을 꾸려 비핼기를 탄다.

*1996년 7월 29일 월요일 맑음 (여행 32일째 여행 마지막 날)

암스텔담

새벽에 잠에서 깼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 남편도 깨어있었다.

"여보! 결국 우리는 해냈어요. 당신 대단한 사람이에요."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당신 때문이야. 나 혼자서는 어림도 없지"

남편도 힘주어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일어나 짐을 꾸렸다. 서울서 가져온 텐트와 침낭 그리고 취사용구까지 이민가방만큼이나 짐이 많았다. 이번 여행은 여행기간이 길었고 밥을 해 먹고 다녔기 때문에 짐이 더 많았다. 큰 보따리가 7개나 되었다. 많은 짐을 호텔 데스크에 맡기고 호텔을 나섰다.

풍차마을인 잔세스칸스로 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가는 길에 고흐 초상이 그려진 접시를 사러 다시 상점을 찾아갔다. 나는 꼭 그 접시를 사고 싶었다. 문이 열려있었다. 고흐의 광기가 느껴지는 그 접시를 NLG79(우리 동 약 \38,000-)를 주고 샀다. 그러나 렘브란트 초상이 그려진 접시는 없었다.

현재도 돌고 있는 잔세스칸스의 풍차들

아름다운 풍차마을 잔세스칸스

잔세스칸스로 가는 기차를 탔다. 풍차가 돌고 있는 관광풍차마을은 잔강을 끼고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목가적인 마을이다. 관광차원에서 꾸며진 마을이지만 실제로 풍차가 돌면서 알료를 빻고, 오일을 짜고있는 움직이는 풍차다. 이곳에는 한글로 된 안내문도 준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가 보다. 여행하면서 태극기와 한글은 본 곳이 꼭 두 곳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다이야몬드집 앞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았다. 그리고 이곳 풍차마을에서다.

바람개비 풍차가 도는 원리를 궁금해 하던 남편이 바람개비에 큰 천이 둘러쳐진 것을 보면서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며 즐거워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고 관심도 없는 원리를 설명하는 남편의 말을 대강 들으며 서울로 돌아간다는 흥분에 마음은 자꾸 스키폴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전원에 풍차마을을 꾸며놓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토산품 가게며 카페, 박물관 등을 만들어 놓은 풍차마을은 여행객들이 하루를 보내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풍차마을엔 볼거리가 많았다. 돌아가는 풍차 말고도 네덜란드의 특산품인 치즈공장에서 생산된 각종 치즈의 맛도 볼 수 있고 델프트 도자기를 전시도하고 팔기도 하는 가게도 재미있었다. 관광객의 인기를 끄는 나막신 공장에선 나막신 만드는 것도 구경하며 커다란 나막신을 신어 볼 수도 있어서 사람들이 하루종일 붐볐다.

암스텔담 스키폴 공항

스키폴 공항 내부

풍차마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 호텔에서 짐을 찾아 Taxi로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밤 12시 30분에 서울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32일간의 긴 여정을 접는다. 감사의 술잔이 넘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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