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렘브란트의 야경과 노인의 초상 그리고 고호의 해바라기

*1996년 7월 28일 일요일 맑음 (여행 31일째)

암스텔담

오늘은 안네 프랑크의 집을 시작으로 국립 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 렘브란트 집 등 돌아 볼 곳이 많다. 안네 프랑크의 집에 도착하니 긴 줄이 이미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국학생들도 꽤 많았다. 흐뭇했다. 아무쪼록 우리 젊은이들이 세상을 많이 봐야한다. 긴 줄 끄트머리에 서서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들을 기분 좋게 듣고 서 있었다. 배낭여행 온 학생들은 무리 지어 안내의 집을 휙 둘러보고는 서둘러 떠난다. 허긴 안네가 2년여 동안 이곳에 숨어살았다는 사실 이외엔 특별한 기념물 등이 없는 안네의 집이다. 나치들이 모두 걷어갔단다. 안네는 1929년 생이니 살았다면 올해로 67세.

내가 중학생일 때 누런 갱지에 번역된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앉은뱅이 책상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공부보다는 책읽기를 좋아했던 시절. 12시가 되면 전기가 나가던 시절에 우리 집은 특선이어서 나는 밤새 책을 읽곤 했다. 6.25전쟁을 겪은 후여서 안네의 일기는 더욱 실감났었다.

안네 프랑크의 집

안네 프랑크의 동상

안네의 집 내부엔 안네의 흔적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일일이 영어로 안내문을 써 붙여 놓았다. 사무실이 있는 앞 건물과 안내가 숨어 지냈던 뒤 건물이 회전식 책장으로 통로가 위장되어 있었던 그대로 보존되어있었고 안네가 일기를 썼던 다락방도 보존되어 있었다. 55년 전쯤에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이렇듯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오버랩 된다. 히틀러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유태인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가 총명해 보이는 안네 프랑크. 안네 기념관을 짓기 위해 안네의 집 바로 옆은 헐려 있었고 기념관 마스터플랜 옆엔 관심 있는 사람들의 기부금을 받는 모금함도 있었다. 안네가 2년 동안 숨어살면서 벽에다 자란 키를 연필로 표시해 놓았던 곳을 프라스틱으로 코팅을 해 영구 보존하고 있었다.

암스텔담의 국립박물관

고호 미술관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렘브란트와 페르메르의 걸작들 그리고 유명한 델프트 도자기관만 들러보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특히 네덜란드의 회화 중 렘브란트의 '야경'이 전시된 곳에는 그 유명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떠날 줄 몰랐다. 나는 '야경'보다는 아주 작은 소품인 '노인의 초상'이라는 그림 앞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세필로 그린 그림이데 노인의 깊은 고뇌가 생생이 전해오는 '노인의 초상'을 보고 나는 렘브란트에 반해버렸다.

네덜란드가 낳은 최대의 화가 렘브란트(1606년∼1669년). 명암의 대비가 분명한 그의 그림처럼 삶도 전반기의 성공과 모든 것을 다 잃고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했던 불행했던 후반기로 극명하게 나뉘어진다고 한다. 유명화가가 되어 1634년 명문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약 10여년 동안 세속적인 성공의 절정에서 대작들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통찰하는 정적인 그림을 그리기에 더 심혈을 기울이면서 유행작가로서의 명성을 잃어갔고 부인의 죽음, 파산선고, 뒤이은 외아들의 죽음 등 잇단 불행 속에서 그는 1669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그림들은 만년에 모든 것을 잃고 불행과 싸우면서 그려낸 인간내면의 심상을 표현한 그림들이라 한다. '노인의 초상'과 렘브란트. 인간의 깊은 고뇌가 절절히 배인 그림 '노인의 초상' 앞에서 화가의 위대성을 본다. 렘브란트 그림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나.

해바라기로 유명한 강렬한 개성의 화가 반 고흐 미술관으로 갔다. 여기도 안네의 집 만큼이나 사람들로 벅적인다. 누군가가 말했다. "고흐의 그림에선 신의 경지를 느낀다"고. 사실화에 가까운 초창기 그림에서부터 1890년 생을 마칠 때까지의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생을 마치는 1890년이 가까워 질 수록 색감이나 터치가 강렬하다. 1888년부터 눈에 뜨게 그림이 달라진다. 후대의 사람들은 극적인 그의 삶에서 연민을 느끼는 것일까?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광기 어린 그의 체취를 그림에서 맛보고 싶어서인가보다. 나도 '자화상'이나 '해바라기'를 오랫동안 감상했다. 국립박물관에서 본 렘브란트의 '노인의 초상'과 더불어 암스테르담을 떠나도 오래오래 기억 될 것이다.

렘브란트의 집

시내에 있는 렘브란트의 동상

내일은 월요일이어서 모든 박물관이 휴관이다. 그래서 서둘러 렘브란트가 26년간 살았던 집으로 갔다. 렘브란트의 집엔 그가 그린 많은 에칭과 데생이 전시되어있었다. 1669년에 세상을 떠난 렘브란트.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거장 렘브란트와의 만남이 암스테르담의 큰 소득이었다. 렘브란트 집 앞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운으로 남는 렘브란트를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노인의 초상'이 자꾸 아른거린다. 렘브란트의 삶과 예술이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갈 내 여행일지에 큰 느낌표 하나로 깊게 새겨진다.

우리는 전차를 타고 안네의 집 근처로 다시 갔다. 그 근처 상점에서 고흐의 초상이 그려진 접시를 본 것 같아서다. 혹시 렘브란트 초상이 그려진 접시도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갔는데 상점은 문이 닫혀있었다. 아쉬웠다. 댐광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많은 관광객 속에 끼어 우리도 광장에 주저 안아 암스테르담의 붉은 저녁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은 서울로 돌아간다.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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