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지로 돌아 왔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좀 쉬자.

*1996년 7월 26일 금요일 맑음 (여행 29일째)

 

레어-암스텔담, 주행거리 314㎞, 주유량 25.00ℓ, 금액 NLG85.96-

얼굴이 퉁퉁 부었다. 어제는 특별히 마음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못 일어날 것 같으나 나그네의 숙명처럼 일어나 움직인다. 식당에서 독일식 아침을 먹었다. 빵, 커피, 쨈, 버터, 햄, 치즈다. 독일 빵은 아주 고소하다. 넓은 식당엔 빈자리가 없다. 가족단위로, 끼리끼리의 학생들로 꽉 찼다. 조용히 식사를 한 후 한쪽에 비눗물에 담겨있는 행주로 식탁을 깨끗이 닦는다. 그리고 다시 행주를 비눗물에 담가 둔다. 냅킨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깨끗하게 먹는다. 학생들은 떠나기 전에 자기들이 잔 방도 말끔히 정리를 하고 떠난다. 기본질서가 몸에 밴 사람들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이들처럼 될 수 있을까?

오래된 레어의 유스호스텔

부엌 시설이 있는 유스호스텔 내부

유스호스텔 낡은 벽돌건물엔 1884년이란 글자가 쓰여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시골에 유서 깊은 유스호스텔이 있는 걸 보며 지도를 보니 네덜란드 국경에서 15㎞쯤 떨어진 곳이었다.

9시가 넘으니 디귿자 모양의 유스호스텔에 꽉 찼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있었다. 차로,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더러는 배낭을 매고 걸어서…. 우리도 유스호스텔을 떠났다. 동네를 빠져 나오는데 주말이어서 청소하는 주부들을 볼 수 있었다. 앞치마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커튼의 먼지를 긴 막대기로 털고 이불을 거풍시키며 유리창을 닦고 화분을 내놓고 부지런히 일하는 주부들. 오래 전에 읽은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의 작가 김영희씨가 쓴 부지런한 독일주부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참을 잊고있던 주부로서의 내 삶이 이제서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돌아가면 저 주부들처럼 열심히 내 일상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을 네덜란드 국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Welcome to Netherlands'을 가리킨다.

어떤 검문도, 사인도 없이 국경을 넘어 네덜란드로 들어왔다. 네덜란드를 떠 난지 이십 팔일 만이다. 아득한 여정이었다. 스스로도 감격스러웠다. 우리의 월드컵 코리아 번호판에 붙었던 NL의 국적인 네덜란드로 돌아왔으니 한국에 돌아온 듯 감격스러웠다. 나는 만세를 불렀다. 우린 해냈다. 백야를 보고 싶다는 오랜 꿈을 기어이 이루었다는 감격에 끝내 울음이 터졌다. 감격의 눈물이.

암스테르담까지는 180㎞ 정도 남았다. 가는 길에 바다를 막아서 국토를 넓힌 인간승리의 현장인 네덜란드의 자존심 북해 댐을 보고 치즈시장으로 유명한 알크마르를 들러 보고 저녁 무렵 쯤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제는 모든 게 느긋하다. 충직한 개 파트라슈가 나오는 '프란다스의 개'의 무대인 판판한 들판이 한없이 이어지는 네덜란드 평화로운 전원을 구경하며 숨찬 여정을 마감하는 느긋한 드라이브를 하는 우리를 축하하듯 날씨가 쾌청하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제일 높은 곳이 321m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전 국토가 평평하다. 그러나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아서 네덜란드는 물과 싸워온 역사를 가진 나라다.

네더란드 북쪽의 거대한 방조제의 동상

방조제의 휴계소

북해 댐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올라가 바다와 내륙을 한눈에 보니 바다를 막아서 국토를 넓힌 대역사의 감동이 생생히 전해온다. 대단한 공사였을 댐과 방조제 축성 공사는 네덜란드 국민의 단합된 힘이었을 것이다. 댐을 건설한 노동자들의 노고를 기린 기념비가 있었고 바다를 막아 만든 40㎞바닷길 중앙엔 이 길이 완성되는 순간의 마지막 돌을 올려놓는 공사장 노동자의 허리 굽힌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허리 굽혀 돌덩이를 올려놓는 시커먼 노동자 동상은 적어도 나에겐 놀라움이었다. 권력자의 거드름피운 동상이 거룩한 말과 함께 번쩍이며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곳엔 땀흘린 주인공의 검게 탄 얼굴이 있었다. 우리 나라였다면? 북해 댐이 준 교훈도 적지 않았다.

알크마르의 치즈 계량소

멀리 치즈 계량소가 보이는 알크마르의 운하

금요일에만 치즈시장이 열리는 알크마르에 도착했을 때는 치즈시장이 막 파장을 했을 때였다. 많은 관광객들이 바흐광장에서 조금 전에 있었던 100년 전통적의 치즈거래시장 열기를 즐기고 있었다. 치즈계량소인 고풍스런 건물엔 치즈 운반인들이 벗어놓은 빨간 모자와 흰 웃옷이 걸려있다. 좁은 운하엔 관광객을 실은 배가 다니고 배가 지나갈 때엔 좁은 운하의 다리가 위로 열리고 배가 지나가면 올렸던 다리를 다시 내려 빗장을 잠그는 일을 일일이 사람이 한다. 차나 사람들은 이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리를 건넌다. 참 재미있는 풍경이다. 엎치락, 뒷치락, 양지와 음지란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열심히 현대화를 외치며 겉과 속 모두를 20세기에 맞추려고 우리 것들을 마구 버린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현대를 살면서도 옛것을 유지하고 지키며 그것이 자랑이고 긍지인 사람들이다. 또 그것을 보고 즐기기 위해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박물관의 박제된 전통이 아닌 삶 속에 같이 숨쉬는 전통이다. 얼마나 재미있고 멋짐인가…. 좁고 낡은 다리를 건너며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알크마르를 두어 시간 돌아본 것은 맛깔스런 음식을 맛본 듯 산뜻했다.

알크마르에서 암스테르담까진 37㎞.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있는 인포메이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호텔도, 유스호스텔도, 민박도 모두 찼단다. 7월말의 암스테르담은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댐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관광객이 들끓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난 곳엔 호텔이 있다는 말에 우린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아주 작은 호텔인데 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긴 여행을 마감하며 이곳에서 3일간 묶기로 했다. 주차도 돈을 내야했다. 우리는 짐을 정리하는 대로 차를 반납하기로 했다. 월드컵코리아 스티커를 띠면서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한달 간이나 한 몸처럼 같이했던 찬데 예상보다 삼일을 앞서 이별하게 되었다. 월드컵코리아를 처음 빌렸던 스키폴 공항의 렌트카 사무실까지 가서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저녁 7시 월드컵 코리아를 반납하러 스키폴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 도착하여 월드컵코리아를 반납하는 마음이 또 섭섭하다. 이별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아프기 마련인가보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던 월드컵 코리아의 찌그러진 앞부분에 잠시 눈길은 주었다. 그리곤 돌아섰다. 공항청사로 돌아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KAL이 뜨는 날인가 보다.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한국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나도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집으로 가고  싶다. 집으로…. 목이 메인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돌아가야 하는 마음이 천근같다. 많이 지쳤고 목이 말랐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다시 전차를 갈아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10년은 늙어 보인다. 새삼스레 거울 속의 나를 낯설게 본다. 한 달 간 주름이 부쩍 늘었다. 맛사지 크림을 듬뿍 바르고 늦은 저녁준비를 했다. 아껴두었던 꽁치 통조림을 얼큰하게 조리고 마늘장아찌와 김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짐 정리를 하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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