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팔을 벌리면 양쪽벽이 닿을 것같은 안텔센이 자란 집

*1996년 7월 25일 목요일 맑음 ( 여행 28일째)

 

오덴세-레어, 주행거리 554㎞, 주유량 26.70ℓ, 금액 DKK180-, 주유량 39.00ℓ, 금액 DEM64-

나그네에겐 분에 넘치는 방이었나 보다. 하룻밤만 자기엔 아까운 그야말로 우아한 침실. 청색 꽃무늬가 화려한 포근한 양털이불. 그런데 잠을 설쳤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풀어진 마음이 피곤을 이기지 못했는가보다. 이젠 이를 악물 기운도 없는지…. 창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빛과 산뜻한 아침공기가 늘어진 나를 유혹한다. 일어나라고.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고. 9시엔 떠나야 한다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하고, 먹고, 짐을 꾸리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섭섭한 마음을 안고 민박집을 떠났다.

우리는 안데르센 박물관으로 다시 갔다. 일본인 여학생 두 명이 첫 입장객이고 다음이 우리다. 소인국에 온 듯한 작은 집들을 겉모습만 옛 그대로 보존하고 안은 모두 터서 한 공간으로 길게 이어지게 해놓았다. 그리고 안데르센의 모든 흔적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한사람의 위대한 작가는 온 인류의 자랑이고 더욱이 그를 키워낸 조국의 긍지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스웨덴의 밀레의 조각공원에서처럼.

안델센 박물관 안의 공연 무대

안델센의 가위 작품들

두 일본인 여학생들은 메모를 꼼꼼히 하면서 철저히 구경을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일본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작은 체구에 단정한 인상, 모자를 쓴 차림새와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언행 등이 퍽 왜소해 보여 우리는 농담으로 피그미족(?)이라고 하기도 했다. 일본 여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개개인의 일본인들과 경제대국 일본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크고 당당하고 훤칠하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엔 지배와 피지배의 아픈 역사가 있다. 알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여….

넓은 전시실엔 세계각국어로 번역 된 안데르센 동화집이 전시되어 있었고 우리 나라 말로 번역된 안데르센 동화집도 있었다. 어느 곳을 가도 일장기와 일본어 안내문이 있다. 이곳에도 일본어 안내문이 있었다. 한글 안내문도 곧 이곳에 붙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도 이젠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자꾸 봐야한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안데르센을 키워내야 한다. 한 때 반짝하는 인기가 아닌 영원한 안데르센을 말이다. 안데르센을 배출한 작은 나라 덴마크가 부럽기까지 하다. 성 크누트 교회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린다. 저 성 크누트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안데르센도 꿈을 키웠겠지. 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두 시간 이상을 안데르센의 동화세계에 빠져 있었다.

멀리 성 크누트 교회가 보이는 거리

안델센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 내부

우리는 걸어서 안데르센이 살았던 집을 다시 찾아갔다. 4∼5평 남짓한 작은집에서 부모님과 살던 집. 남편이 손을 벌리니 양쪽 벽에 손이 닿을 듯 말듯 하다. 안내하는 할머니가 요기서 자고, 요기서 살고, 요기서 아버지가 구두 수선을 하고, 요기가 부엌이었다고 설명한다. 장난감 같다. 웃음이 절로 난다. 행복한 웃음이. 안데르센의 풍부한 상상의 세계의 모태가 바로 여기였구나 하는 감동이 파문이 된다. 성 크누트 교회 종소리가 또 울린다. 종소리는 은은히 울리다 점점 작아지더니 끊어진다. 여운을 남기고….

이 거리도 안데르센이 살았던 집을 중심으로 몇 채의 집과 성 크누트 교회만이 옛 모습 그대로 이고 주위엔 시청과 쇼핑몰 등 오덴세 중심가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덴세는 꿈꾸는 사람들에게 안데르센과 그의 동화 속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인어공주로, 미운 오리새끼로…. 영원한 것의 작은 흔적들도 후세사람들에겐 큰 감동이 된다. 노르웨이 그리그 박물관에서 느낀 감동처럼….

오후 한 시. 오덴세를 떠날 준비를 하는 데 잘가라는 인사처럼 종소리가 울린다. 이젠 덴마크와도 작별이다. 북유럽 4개국 렌트카 여행의 실질적인 종지부를 찍은 이곳 오덴세. 안데르센과의 만남을 끝으로 북유럽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우리부부는 포옹을 했다. 서로에게 격려와 용기가 되어 주었던 한 달간의 협력에 존경의 마음을 담은 포옹이다. 눈물이 핑 돈다. 서울이 어른거린다.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던 암스테르담을 향해 출발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차 속이 굉장히 덥다. 땀이 줄줄이 흐른다. 덴마크의 농촌은 끝없는 전원이다. 언덕도 없고 굴곡이 없는 평평한 국토가 덴마크 국민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비디오로 계속 찍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전원풍경. 푸른 전원에 소나 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은 뜯고 풍향 발전기들이 무심하게 돌아가는 정경이 정답다. E20번 도로를 타고 가다 E45번 도로로 갈아타고 프렌스부르그(Flensburg)에서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가야 한다. 세 시간 이상을 달려 오후 4 시경에 국경에 도착했다. 역시 독일이다 자국 차가 아닌 것은 입국할 때 검문을 한다. 패스포드를 가져간다. 한참 후에 돌려주며 입국을 허락한다.

다시 달렸다. 170㎞ 떨어진 함부르크를 향해 질주한다. 자동차들이 결사적으로 달린다. 무제한 속도로. 우리도 160㎞ 이상으로 달렸다. 벤쯔, 아우디, BMW, 오펠, 폭스바겐, 볼보 등이 많다. 독일 아우토반은 직선거리에다 높낮이도 별로 없다. 그러니 맘껏 달릴 수 있었다. 평평한 지형이 주는 보너스다. 독일로 들어오면서 날씨가 사나워지더니 굵은 빗줄기를 퍼붓는다. 독일 빗방울은 어찌나 큰지 월드컵 코리아가 찌그러질 것 같다. 빗방울이 큰 우박만 하다. 그래도 차들은 질주한다. 함부르크가 가까워지면서 큰 컨테이너 차들이 많아졌고 앞이 안보일 지경으로 물을 뿌옇게 뿌리며 질주한 때면 소형차인 월드컵 코리아는 사야가 흐려지고 흔들려 위험하기도 했다. 남편의 긴장은 극에 달했고 검게 변한 하늘은 무작스럽게 비를 쏟아 붓고 있었다.

함부르크가 가까워지면서 정체는 심해지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답게 수출용 컨테이너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독일의 왕성한 경제력을 실감할 수 있는 함부르크항엔 수출용 컨테이너들이 엄청나게 쌓여있어서 한참을 달려도 시야엔 컨테이너만 들어온다. 큰 배들이 정박해 있는 거대한 항구는 위압적인 20세기의 괴물처럼 보였다. 우박같은 비와 함께…. 독일의 경제력에 그만 질려버릴 것 같았다. 함부르크 외곽도로를 따라 도심을 벗어나는데 한 시간이상이 걸렸다.

함부르크를 벗어나 부레맨(Bremen)까지 왔다. 날씨는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렸다. 네덜란드가 1932년에 북해의 바다를 막아 완성한 네덜란드의 자존심인 40㎞ 방조제를 보기 위해 네덜란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늘은 독일 올덴부르그(Oldenburg)에서 자고 내일 네덜란드로 갈 예정이다. 함부르크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120, 140, 160㎞…. 점점 더 달렸다.

자동차의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기름이 떨어질 듯 바늘이 빨간 선까지 왔다 싶더니 드디어 경고등이 켜졌다. 여행 중 처음 겪는 일이다. 저녁 7시가 지났고 주유소를 발견할 때까지 얼마를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긴장이 금새 몸을 경직시킨다. 하여튼 주유소를 찾아 달렸다. 어느새 올덴부르그를 지났다. 다음도시는 그로이겐(Groingen)이다.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다급해서 Exit으로 빠져 나왔다. 워낙 넓은 땅이어서 푸른 들판만 넘실대지 주유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고속도로변에 주유소가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E22번 도로로 진입하여 달리며 살폈다. Leer이라는 도시 사인이 나왔다. 우리는 또 Exit로 빠졌다. 역시 넓은 들만 보인다. 이 도시가 어느 정도로 큰 도시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여튼 느낌으로 도심을 향해 가보기로 했다. 땀이 흥건이 밴 옷이 척척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눈에 뜨였다. 가스 스테이션을 물으니 죽 가란다. 죽 가라니 죽 가보기로 했다. 제법 멀리 갔다. 주유소가 보였다. 살았다 싶었다. 온몸의 힘이 죽 빠진다. 기름을 넣고 보니 오일 게이지는 아직 100㎞정도는 더 갈 수 있었다. 괜한 호들갑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낯선 고속도로에서의 계기판의 빨간불은 심각한 위협이었다. 어쨌든 두어 시간 애를 태운 우리는 무척 지쳐 있었고 저녁 9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또 숙소를 찾아야 한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유럽 농촌은 숲이 이어지다 간간이 건물이 나오고 또 다시 끝없는 숲과 들녘이 계속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얼마를 더 가야 할지를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달 간의 여행에서 터득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연하게 찾아간다. 어쩌면 여행의 매력이란 바로 막막함이 주는 긴장감과 그것이 해결됐을 때의 성취감과 뿌듯함 인지도 모른다. 수없이 도전하고 성취하고 또 도전하는 의지가 편안한 안주를 박차고 다시 짐을 꾸려 떠나게 하는가보다. 도로 변에 DJH 표시가 보인다 화살표시를 따라 찾아갔다. 늦은 시간에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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