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들의 아버지 안델센을 찾아 오덴세 까지 왔다.

*1996년 7월 24일 수요일 맑음 (여행 27일째)

 

코펜하겐-오덴세, 주행거리 168㎞

코펜하겐을 떠나는 날이다. 여행 중 유일하게 삼일간을 잔 민박집을 떠나는 마음이 각별하다. 오랜 여행 중에서 코펜하겐의 민박집처럼 특별한 인연으로 내 여행일지에 남는 경우도 드물다. 스톡홀름을 떠나 이곳에 왔을 때도 그랬고 귀로에 일정을 앞당겨 코펜하겐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몹시 지쳤고 심리적 피곤까지 겹쳐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때 민박집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릴 맞아주었다. 푸근한 엄마 품처럼 말이다. 우리가 무심히 생각하는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되기도 했다. 편안히 자고, 먹고,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여행의 끝마무리에서 다시 한번 평범한 일상의 축복을 생각해 본다.

멀어지는 민박집을 뒤로하고 다시 인어공주를 찾아갔다가 배낭여행하는 한국학생들을 만났다. 우리부부를 보고 멋진 인생이라며 부럽단다. 학생들의 찬사에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우리 속담이 떠올랐다. 삶의 애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좋은 여행이 되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코펜하겐 관광 명소인 인어공주 상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

국립미술관으로 갔다. 아주 인상적인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림과 마네킹과 패션의 어울림이라는 획기적인 전시회.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앞에 화려한 의상을 입은 마네킹들이 제각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움직이지만 않았지 언뜻 보기엔 모델로 착각할 만큼 생동감 있게 제작된 마네킹들이다. 그림과 마네킹과 마네킹이 입고있는 우아한 드레스 등 실험적 발상이 이채롭다. 많은 코펜하겐 시민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3층까지의 전 관에 전시된 특별전을 보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핀란드에서 받은 충격을 이곳에서 또 한번 받는다. 핀란드 국립박물관에서의 전통 춤 공연, 알바르 알토의 설계로 고속도로 밑을 파서 만든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오늘 이 특별전. 발상의 전환이란 면에서 큰 자극이 되었다.

인상적인 뉘하운 거리

코펜하겐 증권거래소

뉘하운 거리로 나왔다. 배로 코펜하겐의 운하와 바다를 관광하는 코스가 있어서 우리는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배가 출발할 때까지의 여유를 즐겼다. 쾌청한 날씨에 산들바람까지 불어와 여행 막바지의 느긋함이 여행의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안데르센이 살았던 부두거리, 크리스티안스 4세가 지었다는 증권거래소, 거리 곳곳의 운하와 다리, 바다에서 바라본 코펜하겐의 전경 등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주마간산하는 나그네의 눈엔 푸르름에 덮인 이 도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푸른 별 같았다.

오후 3시. 오덴세로 가기 위해 코펜하겐을 출발하는 마음이 설렌다. 안데르센이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꿈 많은 어린 시절은 보낸 오덴세. 우리는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를 보기 위해 귀로에 코펜하겐으로 다시 왔었다. 오덴세는 코펜하겐이 있는 셀란 섬이 아닌 퓐 섬에 있다. 페리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는 한시간 반 동안 푸르고, 펀펀하고, 평화로운 덴마크의 전원풍경이 아이들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안데르센의 동화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평화롭고 한가한 농촌들판이 꿈을 꾸게 한다.

오덴세가 있는 퓐 섬으로 가는 페리에서

오덴세 시청

20분 후에 떠나는 페리가 있었다. 페리 안 카페테리아에는 어딜 가나 만나던 일본관광객은 물론 동양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여행시즌이 끝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긴 7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으니…. 커피와 단 케이크를 먹으며 안데르센의 꿈의 세계에 빠져있던 우리는 셀란 섬과 퓐 섬을 연결하는 바다 위의 엄청난 다리공사를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두 섬 사이는 페리로 한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망망한 바다 위에 놓고 있는 대 역사를 보며 그만 질려버렸다. 이미 80%는 완성이 되었고 중간의 현수교만이 미완성으로 남아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다리가 완성되면 대단한 볼거리가 될 것 같다.

퓐 섬에 도착하니 가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오덴세까지는 30여㎞가야한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세끼, 벌거벗은 임금님 등. 아이들이 읽고 또 읽으며 자라던 그 숫한 이야기들을 잉태하게 해준 안데르센의 텃밭을 보러 가는 마음이 설렌다. 넓은 초지엔 목초가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덴마크는 어딜 가나 드넓은 평윈뿐인 나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넓고 편안하나보다. 오덴세를 3㎞ 앞 둔 캠핑사이트에 들렀다. 빈 오두막이 없어서 오덴세까지 가기로 했다. 오덴세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민박을 구할 수 있었다. 이곳 인포메이션센터는 7시까지 한다. 그러나 대 도시에선 11시까지 여는 곳도 많다. 오덴세는 덴마크 제 3의 도시지만 작고 조용해서 도시 전체가 동화의 세계 같다.

안델센 생가

안델센 박물관 가는 골목길

숙소가 정해졌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덴세 시청 근처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안데르센이 태어난 곳으로 갔다. 지금은 안데르센 박물관이 되어있는 H. C Andersen Hus. 아∼ 이런 곳에서 안데르센이 태어났구나∼. 어른인 내 얼굴에 금방 미소가 번진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작은 뾰족 지붕과 빨간 기와들. 성큼성큼 걸으면 금방 끝이 날 것 같은 골목. 집집의 작은 창문에 처진 작고 예쁜 레이스 커튼과 앙증맞은 화분하나. 꼬마 나라에 온 것 같다. 안데르센이 태어났던 그때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이 골목은 꼭 TV 어린이시간 동화나라를 찍는 예쁜 세트장 같다. 아니, 동화 그 자체다.

박물관이 6시에 문을 닫은 후여서 조용하고 인적 끈긴 골목 안을 아이들처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단번에 뛰어갔다 뛰어오기를 몇 번하다가 나는 안데르센 집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골목에 피어있는 한 그루 접시꽃과 넝쿨장미가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붉게 피어 웃고 있었다. 역시 위대함은 자연과 가까이에서 잉태되나보다.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그리고 편안한 것의 위대함이여….

안델센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

오덴세의 민박 집

내일 아침에 다시 오기로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안데르센이 두 살부터 열 네 살까지 살았다는 집을 찾아갔다. 후에 안데르센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 곳이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중간쯤에서 안데르센이 살았다는 노란색 집에 3번지라는 번지수가 붙어있었다. 안데르센에 대한 목마름을 여기에서 접고 늦은 시간 민박집을 찾아갔다.

개인 집 2층에 있는 방은 일류호텔처럼 품위 있게 꾸며 놓았다. 이곳 사람들의 철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밤을 정말 편안한 밤이 될 것 같다. 안델센의 아름다운 동화 속 세상처럼….

[목 차]  [전날 1996년 7월 23일]  [다음날 1996년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