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리대로 따르면 된다. 아침에 골든 루트의 맛을 보다.

*1996년 7월 16일. 화요일. 흐림 (여행 19일째)

 

온달스네스-브릭스달, 주행거리 201㎞, 주유량 29.40ℓ, 금액 NOK263-

새우잠에서 깼다. 남편이 없다. 아침 8시 30분. 몸이 불덩어리고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는다. 퉁퉁 부운 몸으로 카라반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차를 만지고 있었다. 언제 그랬드냐 싶게 날씨는 활짝 개였고 비온 뒤끝의 상쾌함이 어제의 악몽을 아득하게 한다. 남편은 과열로 인해 엔진에 무리가 온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봤단다. 엔진이 식은 상태에서 오르내리기를 해 본 결과 온도 OK. 라디에이터 팬이 작동 OK. 냉각수 OK. 휴즈 OK. 마지막으로 엔진오일을 보니 오일 량 미달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밤새 차를 진단한 결과를 보고(?) 한다. 어제는 숙소 때문에도 예상을 넘는 오버를 했었다.

아침부터 골든 루트로 가는 차들이 끊이질 않고 건너편 깨끗하고 예쁜 통나무집 인(INN)에서 차를 세우고 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시며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러는 우리 카라반 옆에 차를 세우고 아침식사를 한다. 선 채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빵 몇 조각에 햄과 치즈 그리고 커피한잔이 전부인 아침식사다. 젊은 부부들은 대체로 두 자녀를 두었다. 요즘 우리 나라 젊은 부부들이 한 자녀를 선호하는 것과는 퍽 달랐다. 차를 멈추고 쉬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논다. 그리고 다시 차에 타라면 싫다고 떼를 쓰고 우는 아이들. 엄마한테 궁둥짝을 서 너 차례 얻어맞고서야 떼를 멈추고 차에 올라탄다. 엄한 엄마와 너그러운 아빠의 모습이 요즘 우리 나라 젊은 부부 와 비슷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11시에 우리도 출발했다. 조심스럽게 엑셀을 밟았다.

 

골든 루트의 폭포

 

골든 루트의 굽은 길

"The Golden Route" 란 이름의 이곳은 거의 절벽에 가까운 바위산에 지그재그로 길은 내어 곡예 하듯 가파르게 오르게 되어있다. 크고 작은 수백개의 폭포들이 쏟아내는 폭포수는 장관을 이루고 햇빛에 물보라는 곳곳에 무지개를 만든다. 물에 젖어 미끄러운 길을 엉금엉금 기어오르다 저쪽에서 차가 오면 기다렸다 다시 올라가는 위험한 외길 골든 루트. 아슬아슬한 스릴과 기막힌 경관이 과히 압권이다. 정상의 방하 녹은 물이 거대한 강이 되어 아래로 사정없이 떨어진다. 자연의 경이와 이에 순응하는 인간과의 하모니가 골든 루트의 매력인가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노르웨이의 자연에 나는 자꾸 자꾸 겸손해진다. 노르웨이를 종단하면서 나는 대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메시지를 성경이나 팔만대장경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오늘도 엄청난 스케일의 골든 루트를 지나면서 또 그 생각이 떠올랐다.

골든루트 정상에서 만난 재미교포 부부

에이랑게르-헬레실트 페리 선상에서

어제의 악몽이 오늘의 축복이 되었다. 어제 계획대로라면 이 절경을 서둘러 넘어 잠자리 구하기에 얼마나 허둥댔을까…. 아니 빗속에 미끄럽고 좁은 위험한 길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을까…. 차가 멈춰준 것이 그렇게 고마운 일이었는지 오늘에서야 절감한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인생임을 다시 실감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정상을 향해 올라가며 절경을 즐긴다. 정상엔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폭포의 발원지가 있고 우리가 올라온 길이 아슬아슬하게 끝이 없다. 정상 관망대에서 오랜만에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반가웠다. 워싱턴 DC에 사는 재미동포였다.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어제의 우여곡절이 오늘의 감사로 되돌아 온 특별한 체험이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앞으로의 삶에서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 브릭스달(Briksdal)을 향해 출발했다.

페리를 타고 15분만에 에이스달에 도착했다. 60번 도로로 예이랑게르로, 또 다시 페리로 한시간만에 핼레실에 도착했다. 주유소가 있었다. 엔진 오일 2L을 보충했다. 이젠 안심이다. 다시 시트린으로 출발, 로엔, 올덴을 지나 브릭스달까지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쁘고 바쁘다. 그야말고 죽기살기로 달리다 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그만큼 노르웨이는 지형상 서둘러도 어쩔 수 없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곳이다. 빙하관광으로 유명한 이 코스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한발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또 숙소 때문에 고생이다. 어제 혼이 났으니 오늘은 일찍 잠자리를 구해야 했다. 다행이 지금은 오후 5시. Cottage사인을 보고 들어갔다. 빈 오두막이 없단다. 돌아 나오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게스트 하우스에 단지 룸만 빌려준다는 안내를 보고 농가를 찾아 들어갔다.

브릭스달에서 한 밤을 보낸 민박집

북유럽 최대의 브릭스달 빙하

NOK300에 숙소를 정했다. 방이 정갈하고 깨끗했다. 어젯밤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 넓은 퀸 사이즈 침대와 깨끗한 시트 그리고 두툼한 양털이불이 뜻밖의 횡재를 한 것 같다. 집을 떠난 지 20여일 만에, 코펜하겐의 민박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포근하고 안락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행복함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마음고생과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설움이 한꺼번에 터진다. '인생은 세웅지마(歲雄之馬)' 란 말처럼 여행도 엎치락뒤치락 거기서 거기다.

소똥냄새가 가득한 노르웨이의 농가풍경이 목가적이다. 브릭스달의 거대한 빙하가 한눈에 보이는 넓은 창, 쭉쭉 벗은 삼나무들 사이로 녹색의 호수, 푸른 언덕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와 개들, 말과 소가 풀을 뜯고있는 해질녘 농가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또 서러워진다. '엄마찾아 삼만리' 만화영화를 보며 울던 우리 아이들처럼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힘든 고비 고비를 넘기며 브릭스달까지 온 우리들이 가여웠다. 엉엉 소리내어 울고싶었다. 우리 집 안방 같이 편안한 침실을 보니 또 마음이 헤이해졌나보다. 눈가에 맺힌 물기를 얼른 흠치고 밖으로 나왔다.

북유럽최대의 빙하를 보러 우리는 떠났다. 빙하 입구에 차를 세웠다. 여기부터는 약 한시간 동안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일년 전 캐나다 콜럼비아빙하를 봤을 때도 지구의 신비를 느꼈었다. 브릭스달의 빙하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브릭스달 빙하를 보러 가는 길에도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은 많이 본다. 등산복차림의 부부와 자녀, 알록달록 부부 룩에 머리띠를 두른 부부, 할아버지와 손자가 당기고 밀며 올라가는 아름다운 모습, 더러는 몸이 불편한 사람을 서로 도우며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브릭스달 빙하가 세월 속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는 표시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1820년에 빙하의 시작이 여기였다고. 조금 더 올라가면 1880년엔 빙하가 여기까지 덮여있었다고. 여러 번의 표시로 지구의 기후 변화를 알 수 있었고 이렇게 지금도 빙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약 1시간을 올라가니 엄청난 규모의 청록색 빙하가 거기 있었다. 무한한 노르웨이의 자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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