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극권 마지막 기차역이 있는 보되를 지나 북극권을 넘다.

*1996년 7월 14일 일요일. 비 (여행 17일째)

 

스트루멘-브렉바쎌브, 주행거리 545㎞, 주유량(2회) 70.00ℓ, 금액 NOK636-

 날 밤을 새우려나 보다. 새벽 3시 30분이다. 멀리 달아난 잠을 잊고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피오르드 연안으로 나왔다. 배가 떠있는 피오르드의 백야를 담기 위해서다. 새로울 것 없다 하더라도 한밤에 태양을 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큰길까지 나가서 피오르드의 백야를 비디오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잠에서 깬 남편이 따라 나왔다. 몽유병환자들처럼 사위가 고요한 피오르드 연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앉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여기는 노르웨이. 마지막 백야의 밤이다.

스트루멘 새벽 3시 26분의 백야

지난 밤을 지낸 오두막

우리는 나르비크를 지나서 비가 내리는 북극권 제2의 도시 보되에 도착했다. 일요일이어서 교회의 종소리가 은은히 퍼지는 보되 시내를 한바퀴 돌아 항구 옆 철도역으로 갔다. 노르웨이의 철도는 나르비크가 종착역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되가 종착역이나 마찬가지다. 노르웨이는 지형이 험한 산악국가이면서도 피오르드가 많아 철도를 놓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보되에서 노르웨이 철도는 끝이 난다. 우리가 지나온 보되보다 북쪽에 있는 나르비크는 유럽 최북단 기차역이다. 그러나 나르비크로 가려면 남쪽에 있는 트론헤임에서 스웨덴의 키루나로 국경을 넘어 갔다가 다시 국경을 넘어와 나르비크로 가야한다. 보되에서 나르비크로 곧장 철도를 놓은 일은 불가능해서이다. 이런 이유에서 보되는 실질적인 노르웨이 철도의 종착역인 셈이다. 험한 지형이라는 난관을 뚫고 철도를 가설한 노르웨이의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노르웨이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보되 철도역엔 배낭 여행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철도역을 배경으로 역무원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보되 역사를 배경으로 역무원과

보되의 선착장

교회로 유아세례식을 하러 가는 가족들을 만났다. 아가를 넣은 바구니를 든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 외의 친지들이 성장을 하고 교회로 간다. 아마 세 번째 아이는 아들인가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교회로 가고 있는 이들을 보며 가족이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북구사람들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캠핑장에서도, 페리에서도,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번번이 느끼는 느낌이다. 대부분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다. 우리 나라의 젊은 부부는 한 자녀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두 자녀 이상이 보통인 듯 했다.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전통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라며 교회 앞을 떠났다.

알타 암각화가 그려있는 북극권 기념물

북극권 위도 표시물 북위 66도 33분

우리는 11시쯤 보되를 떠났다. E6번 도로를 따라 2시간 30분쯤을 달렸다. 날씨는 잔뜩 흐렸고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변화 없는 황량한 고원풍경이 계속되어 조금은 지루하다 싶은 1시 30분쯤에 뜻밖에 북극권 (Arctic Circle)이란 사인이 나타났다. 북위 66도 33분. E6번 도로에 북극권임을 나타내는 흰줄이 그어져있었다. 핀란드의 산타클로스 마을처럼 노르웨이도 북극권이 지나가는 곳임을 알리는 하얀 줄을 보도 위에 그려놓고 이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우린 노르웨이도 북극권이 지나는 곳에 기념물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핀란드처럼 북극권을 관광명소로 크게 상품화시키지 않은 노르웨이다. 넓고 평평한 고원엔 노르카프의 지구의 모형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알타의 암각화를 복제해 놓은 상징물이 있었다. 바람불고 비 뿌리는 춥고 사나운 날씨임에도 카페테리아와 기념품가게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조형물 주위의 황량한 벌판엔 돌무덤들이 많이 있었다. 노르카프에도 여기저기 돌무덤들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사람들의 염원이 돌무덤으로 남아있다. 나도 소원을 빌며 돌무덤을 쌓아 올렸다. 우리네 삶은 어쩜 기원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도 사람들은 소원을 적은 종이쪽지를 벽 틈새에 쑤셔 넣으며 기도를 했었다. 나도 통곡의 벽에 소원을 빈 쪽지를 넣으며 소원을 빌었었다. 경외스런 곳에 오면 나약한 인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소망의 기도를 하게되나 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기도를…. 사나운 날씨가 쌓아올린 돌무덤을 허물어버릴까 봐 쪼그리고 앉아서 정성을 드려 쌓았다. 눈물이 핑 돈다. 우리의 역마살은 언제쯤이나 멈추게 될까? 삶에 편안히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 정신적 방황이 아직도 내 안에 뜨겁게 끓고 있으니…. 십 여 년을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우리의 떠돌이 기질이 뜨거운 연민이 되어 가슴에 파고든다.

핀란드 북극권인 산타클로스 마을과 노르웨이의 북극권 (ArcticCircle)은 서로 다른 특색이 있었다. 핀란드는 북극권을 66도 33분 07초로 표시해 놓고 산타마을을 만들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산타할아버지를 상징적으로 내세워 인간적인 북극권을 부각시켰다.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고 산타 우체국에서 산타마을을 방문한 기념으로 산타 우표를 붙여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 재미있는 발상과 갖가지 산타클로스와 관련된 상품들을 개발해 놓았다. 그래서 산타마을에 온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한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북극권을 66도 33분으로 표시해 놓고 북극권 이내에서만 일어나는 특이한 태양계의 자연현상인 백야를 부각시켜 놓았다. 지구가 약 23도 정도로 기울어져서 일어나는 백야현상의 상징인 지구의를 중심으로 북극권 생태계의 삶의 모습인 알타 암각화를 복제해 놓았다.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북극권 내의 인간들의 삶에서 삶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요소들을 부각시켰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 건물도 라풀란드의 주인인 사메족의 주거형태를 상징적으로 본따서 만들어 놓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연어 오픈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이곳을 떠났다. 계획에 없던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갈 길이 바빴다. 이젠 북극권을 벗어났다. 우린 노르웨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E6번 도로를 따라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날씨는 들쭉날쭉 요변을 떨고 다시 험한 지형은 나그네를 긴장시키고 세찬 바람에 몸 컨디션도 엉망이다. 계획을 바꿔서 오늘의 목적지를 100㎞ 정도 앞둔 캠팽장에 여장을 풀었다.

아우렌 오두막이 있는 캠프 사이트

아우렌이라는 예쁜 이름의 오두막

영화 '흐르는 감물처럼'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경관이 수려한 캠핑사이트다. 지금까지 머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자연과 오두막에 감탄을 한다. 오두막 저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산세가 완만한 부드러운 산자락에 작고 예쁜 오두막들이 뜸뜸이 있다. 오두막 문엔 작은 등과 예쁜 이름이 붙어있고 처마 끝엔 꽃화분이 바람에 흔들린다. 아! 아름다운 풍경…. 우리 오두막엔 아우렌(Auren)이란 예쁜 이름이 붙어있다.

오두막의 히타와 취사용 불판을 다 켜 놓고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너무 추워서 꼼짝 않고 불 옆에 앉았다가 펄펄 끊인 물에 찬밥을 말아 햄과 풋마늘 장아찌 멸치볶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추웠다, 바람 불다, 비 뿌리는 변덕스런 날씨로 아무래도 감기가 들었나보다. 감기약을 한 알 먹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이킹 후예답게 용맹스러운 데가 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끄덕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긴다. 우리가 캠핑장에 들어올 때부터 강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2시간이 지난 지금도 무릎까지 잠기는 강에서 여전히 낚시를 하고 있다. 두꺼운 트레이닝에 후드를 쓰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길에 나서는 부부, 놀이터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가족끼리 오솔길을 따라 걷고있는 모습들. 사람들은 저마다 조용히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을, 겨울 같은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화끈해야 놓는 것 같다는 그리고 남을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 식의 휴가문화가 아득하다. 어딜가나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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