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문젠을 떠오르게 하고 북극권 최대 대학이 있는 트롬쇠

*1996년 7월 13일 토요일. 맑음 (여행 16일째)

 

스키보튼-스트루멘, 주행거리 600㎞, 주유량 37.00ℓ, 금액 NOK360-

캠핑장을 떠날 땐 날씨가 맑았다. 헬싱키를 떠나던 오후 이후, 이렇게 날씨가 맑은 날은 처음이다. 기분이 살아난다. 서둘러 떠난 이유는 트롬쇠로 가기 위해서다.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같은 시간대임을 깜빡 잊고 있던 우리는 오늘에서야 지금시간이 아침 9시가 아니라 8시임을 알았다. 그래서 트롬쇠를 들러 가기로 했다. 북극권 최대의 도시 트롬쇠를 그냥 지나치기가 아무래도 아쉬워서다.

보되로 직접 갈 예정을 바꾸어 트롬쇠로 E8번 도로를 따라 북상했다. 이 같은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여유와 이곳 상황에 적응이 된 자신감 때문이었다. 피오르드 길을 지루하게 돌아야 하는 따분함이 조금은 걱정도 된다. 그러나 오늘은 생기가 솟는 아침이어서 어려운 결정을 하고 용감하게 트롬쇠를 향해 73㎞를 북상하여 캠핑장을 떠난 지 2시간여 만에 트롬쇠에 도착했다.

트롬쇠가는 길의 아침 풍경은 호수와 산과 숲과 하늘과 마을들이 말 할 수 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어딜 가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절경인데 트롬쇠로 가는 길은 특별히 더 아름다웠다. 여유와 편안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3년 전 시베리아 횡단 철도여행을 하면서 본 수채화 같은 시베리아의 자연도, 캐나다 럭키를 여행하면서 본 변화 있는 다이나믹한 자연도 내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이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깊고 무한한 자연에 비하면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오른쪽의 다리를 건너서 트롬쇠의 시내로 들어 간다

신비스러운 풍광에 매료되어 달리다보니 어느새 트롬쇠가 한눈에 들어왔다. 트롬쇠위아 섬과 노르웨이 본토를 잇는 1㎞이상의 트롬쇠 다리 위에서 바라본 트롬쇠 전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아침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형형색색의 건물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니….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용기를 내어 트롬쇠를 보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그냥 지나쳤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트롬쇠는 지금까지 본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웠다..

트롬쇠 시내의 아문센 동상

트롬쇠의 트롬스달 교회

트롬쇠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우뚝 선 트롬스달교회는 트롬쇠의 랜드마크다. 1965년에 완공된 삼각형모양의 교회는 흰색 콘크리트와 1000장이 넘는 유리로 외벽을 장식한 현대적 감각의 설계로 북극권 특유의 빛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는 건물로 유명하다. 해가 뜨지 않는 긴 겨울의 침울함을 예술로 승화시킨 북구 특유의 문화가 낳은 특이한 발상이 신선했다.

우리는 트롬쇠 다리를 건너서 시내로 들어왔다. 인포메이션센터에서 흰곰과 순록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북극권에 온 증명서(Polar Certificate)를 기념으로 받고 남편과 나는 한글로 사인을 했다. 아문젠 동상이 있는 중심가로 왔다. 주차를 하고 내리다가 카메라를 자동차 문에 부딪혔는데 카메라에 이상이 생겼다. 아무리해도 카메라가 작동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중심가에 있는 카메라 숍에서 카메라를 하나 샀다. 이래저래 트롬쇠와는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북극권 도시 트롬쇠는 번화한 시가지 한복판에 아담한 구교회 대사원이 있고 세계 최북단 대학이 있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젊은이들과 관광객들로 활력이 넘쳤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기보다는 활기찬 거리나 아름다운 트롬쇠 전경 그리고 북극권을 기념하는 증명서 발급, 탐험의 상징 아문젠 동상, 1㎞가 넘는 긴 트롬쇠 다리, 북극권의 상징 트롬스달 교회 등으로 대표되는 이 도시는 나그네가 들렀다 가는데 손색이 없었다.

북극권 방문 증명서

벌써 겨울을 준비하는지 골목의 부지런한 남자가 장작을 패서 집 옆에 쌓아 둔다. 큰 상점 앞에 있는 사람 키 만한 흰 북극곰 박제를 보며 북극권 긴 겨울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날씨는 좋고, 아름다운 도시 트롬쇠를 본 여운은 길게 남고, 신선이 된 듯 유유자적하며 트롬쇠를 떠나는 우리가 오늘따라 여유롭다. 노르카프를 향해 갈 때의 긴장이나 경직된 마음 그리고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자유롭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이 꿈결인양 편안하다. 집을 떠난 후 처음 느껴보는 느긋함이다.

독일 오토바이 메니아들

카페리 선상에서

E6 도로변 쉼터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아침에 밥을 지어 왔기 때문에 찬물에 말아서 밑반찬하고 먹는 맛이 꿀맛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청년 세명이 건너편 테이블에서 쉬고있다. 오토바이 매니아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검은 복장에 무리를 져서 다닌다. 눈빛이 초롱초롱하니 잘 생긴 청년들이다. 내가 그들은 보고 웃으니 우리 곁으로 와서 말을 건다. 오토바이로 함부르크에서 노르카프까지 가는 독일청년들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날씨가 어떻드냐고 묻는다. 그리고 일본인이냐? 고 한다. 코리언이라고 하자 "현다이", "삼성"을 말한다. 이럴때 기분이 좋다. 이젠 어딜 가나 코리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83년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땐 꿈도 못 꾸던 상황이다. 그들은 노르카프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었고 우리는 한참 얘기를 했다.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산길과 피오르드 길을 번갈아 돌면서 E6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갔다. 갑자기 페리 사인이 나오며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는 차들을 피해 앞으로 직진하려다 페리 요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바로 앞이 바다였다. E6번도로의 이 구간은 페리를 타야함을 몰랐던 우리는 지도를 다시 보고서야 페리를 타는 표시가 있는 것을 알았다. 한 순간 바다로 떨어질 뻔했던 일에 우리는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25분간 바다를 건너 다시 보되를 향해 달렸다. 보되를 20㎞앞두고 있다. 피곤이 몰려온다. 캠핑사이트의 오두막을 찾아 쉬어야겠다. 오늘은 600㎞를 뛰었다. 하루 주행거리로는 최고기록이다.

지금시간은 밤 12시 45분. 여행예정일의 꼭 반이 지나고 있다. 피곤에 지친 남편의 숨소리는 고르게 들리고 북극권에서의 마지막 밤이 될 이 오두막에서 나는 백야와 마주하고 앉았다. 쭉쭉 벗은 삼나무와 자작나무 사이로 피오르드의 바닷물이 백야에 벌겋게 물들어 출렁인다. 흰눈을 잔뜩 뒤집어 쓴 바위산들이 캠핑사이트를 뺑 둘러 싼 풍경이 한 폭의 뭉크 그림 같다. 핀란드 아테네움 미술관에서 본 인상적인 뭉크 그림이 그대로 연상되는 곳이다. 밖은 점점 더 밝아지고 정담과 바비큐로 백야의 여름밤을 즐기는 가족들이 캠핑사이트 여기저기에서 정답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밤을 잊고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백야는 점점 더 대낮 같이 환해질 것이다. 보되를 지나면 북극권을 벗어난다. 자연히 백야와도 작별이다. 백야라는 말에 매료되어 시작한 여행이 저지르고, 부딪치고, 배우고, 느끼며 편지 받은 설레임처럼 뿌듯함이 쌓여간다.

북극권 안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나는 잠을 잊은 채 작은 창가에서 일기를 쓰고있다. 연 브라운 커튼을 제치고 전등불이 아닌 자연의 빛으로 돋보기를 쓴 채 일기장을 넘긴다. 너무 장거리를 달려서인지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점점 더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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