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각화에 빠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 선인들을 그린다.

*1996년 7월 12일 금요일. 흐림 (여행 15일째)

 

알타-스키보튼, 주행거리 301㎞

비 개인아침을 맞은 기분이 상쾌하다. 아침을 지으려고 수돗가로 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금발의 두 여자아이가 인형 같이 예뻐서 다가갔더니 수줍게 웃는다. 아이 엄마인 젊은 여인과 인사를 하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오두막 옆에 세워둔 빨간색 자동차를 가리키며 자기 차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기아자동차인 세피아였다. 반가웠다. 아기엄마는 차가 아주 마음에 든다며 좋아한다. 우리 자동차를 선택해준 아기엄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얼른 오두막으로 돌아와 태극선 부채와 매듭 민예품을 가져다주었다. 주는 마음도 받는 마음도 흐뭇하다. 2년 전, 페루 마추피추에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소형버스가 모두 우리 나라 산인 것을 보고 감격했을 때처럼 으쓱하다.

알타 박물관

알타 박물관의 암각화

오두막을 떠나 아침 10시에 알타 뮤지움에 도착해서 오후 3시에 떠날 때까지 5시간을 이곳 알타에서 보냈다. 알타 피오르드연안에는 B.C 3,000년경부터 수세기에 걸쳐 연안에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암벽에 그들의 생활상을 그려 놓은 암각화가 있어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사실 우리는 알타뮤지움이 있다는 사실을 어제 처음 알았다. 캠핑사이트 주인이 꼭 가보라고 추천을 해서 보되로 가는 길에 들렀는데 수 십대의 관광버스와 많은 서양 단체 관광객들이 와있었다. 멋진 박물관 건물과 피오르드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암각화에 매료되어 예정에도 없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박물관은 1991년에 지어 1993년에는 유럽의 '그해의 박물관 상'을 받은 건물로 남편의 찬사가 후 했다.

피오르드연안에 피어있는 색색의 들꽃들. 청록색 물빛과 파란하늘. 상큼한 바다바람과 연안을 따라 14곳에 그려진 암각화들. 환상적인 해안가 풍경과 석기시대 사람들의 흔적을 보는 짜릿함. 그대로 흥분과 감동이었다. 서양 관광객들 속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가 하도 열심히 암각화를 들여다보며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비디오 카메라에 우리를 담으며 남편에게 암각화 연구가냐고 묻는다.

피오르드 옆의 박물관내의 쉼 터

피오르드 연안의 암각화

14포인트의 암각화를 모두 비디오카메라에 담는데 4시간이 걸렸고 출발했던 원 위치로 돌아왔을 땐 오후 2시가 넘어있었다. 4시간을 피오르드 해안가를 돌며 암각화에 빠져버린 남편이 눈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떼면서

"여기가 어디지?" 한다.

무섭게 몰입하는 남편. 설계하듯 치밀하고 빈틈 없이 준비하는 남편의 저 성격 때문에 여행의 발상에서 계획과 준비까지 그야말로 시작과 끝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뮤지움 식당으로 돌아왔다. 늦은 점심을 커피와 연어와 새우 그리고 소고기가 든 오픈샌드위치로 먹었다. 알타 암각화에 대한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아름다운 알타 피오르드를 떠났다.

E6 로로변의 연어를 말리는 덕장

덕장 옆의 쉼 터

노르웨이 자연은 가는 곳마다 지금까지 본 어느 곳보다 여기가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하게된다.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난 자연이 경이롭고 무한하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 노르웨이의 자연이여….

알타에서 너무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오늘의 목적지인 트롬쇠(Tromsø)까진 갈 수 없을 것 같다. 산악국가인 노르웨이 길은 왕복 2차선이고 마을이 있는 곳에선 50㎞의 제한속도가 있고 꼬불꼬불하고 오르락내리락 심해 마냥 천천히 가는 수밖에 왕도가 없었다.

노르웨이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여 오슬로까지 가는 길은 알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피오르드가 계속되었다.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간 피오르드의 수려한 경관에 감탄을 하던 우리도 이젠 계속되는 피오르드가 지겨워졌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끝까지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길고 긴 피오르드 길은 마음이 급한 나그네에겐 지겹고 힘든 장애물이었다. 우리 식으로 피오르드 내륙 쪽에 다리라도 하나 놓아두면 급한 사람들은 시간을 단축해서 지름길로 갈 수 있을 텐데 자연 그대로인 피오르드 해안선을 따라가야 하는 일은 지루할 만큼 인내심을 요구했다. 어떤 땐 빤히 보이는 피오르드 건너편 길을 돌아 나오는데 40분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저녁 9시가 되어 가는데 예상했던 것 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트롬쇠 진입로까지 가지도 못하고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E6번 도로를 따라 달렸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빨리 숙소를 정해야 했다. 도로변 캠핑장에 들렸으나 방이 없단다. 우리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니 반갑다고 악수를 청한다. 코리아는 잘 알지만 자기 캠핑사이트에 온 코리언은 아직 없었다며 우릴 반기는 캠핑장 주인남자는 방이 없어 미안하다며 약도까지 그려주며 다른 캠핑장을 안내해 준다. 캠핑사이트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는 관심에 우리도 피로가 풀린다.

안내해준 캠핑장을 찾아갔다. 남자는 전화를 받았다며 4호실로 우릴 안내해준다. 캠핑장 정면엔 빙하를 뒤집어 쓰고있는 우뚝한 산들이 장관을 이루고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오늘은 피오르드 해안 길을 달려오느라고 너무 지쳤다. 식사 후 골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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