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에 그리던 한밤에 북쪽 하늘에 떠있는 태양, 백야를 보다.

*1996년 7월 10일 수요일. 비. 갬 (여행 13일째)

 

이나리-노르카프, 주행거리 384㎞, 주유량 13.00ℓ, 금액 FIM73-

 밖이 너무 환하고 밝아서 깜짝 놀라 깼다. 바깥이 대낮 같이 밝다. 북쪽으로 난 창의 커튼을 재치니 쨍쨍한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온다. 눈이 부셔서 2층 침대에서 자던 남편이 얼굴을 찡그리며 깬다. 새벽 2시다. 밖은 한낮이다. 아!... 놀랍고 경이로운 현상.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 대지가 숨을 죽인 적막한 한밤, 사위는 조용하고 고즈넉한데 바다 같은 이나리 호수 위에 태양만이 홀로 떠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무나 생경한 분위기.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백야와는 확연히 다른 그리고 상상으로 그려보던 백야와는 너무나 다른 현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로 이것이 "백야였구나". 강한 햇볕과 한밤의 고즈넉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충격적인 풍광.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호수 위 낮게 떠있는 태양을 오래도록 보았다. 남편도 밖으로 나와 비디오 카메라에 이나리 호수의 백야를 담았다. 백야를 보고 싶다는 오랜 꿈이 노르카프가 아닌 이나리 호수에서 이미 이루진 것 같았다. 핀란드 이나리 호수의 찬란한 백야를….

새벽 2시 49분 이나리 호수의 백야

아침 9시 30분 캠핑사이트를 출발할 때는 또 가랑비가 내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새벽의 그 찬란한 태양과 아침의 가랑비는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태양계의 자연현상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태양과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9개의 행성들. 태양계 세 번째 행성인 지구에 여름에만 일어나는 북극권 백야현상은 물론 우주의 신비가 신기할 따름이다.

사미 박물관 내의 주거지

사미 박물관 내의 수렵 장치

우리는 핀란드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라풀란드의 주인인 사미족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미(Semi)박물관으로 갔다. 물론 우리가 첫 손님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도 한국사람은 처음이라며 반긴다. 이곳은 라풀란드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랩족의 주거형태를 한곳에 모아 놓은 야외 박물관으로 우리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무도 없는 넓은 전시장을 한시간 이상을 둘러보았다. 야외에 전시된 사미족의 천막이나 짚으로 엮어 만든 초막엔 순록의 가죽 등 동물들의 가죽을 이용한 생활용품과 옷가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미족의 사냥풍습을 비롯하여 생과 사 그리고 갖가지 삶의 형태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야외 박물관 넓은 전시장에서 동물가죽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와 빗속에 몰려든 모기떼의 극성으로 나는 곤욕을 치렀다. 비디오 카메라로 전시물과 설명문을 찍는 남편에게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쳐주어 비디오 카메라 렌즈에 물방울이 튀지 않게 하고, 한 손으로는 남편에게 달려드는 모기떼를 쫓는 동안 손을 쓸 수 없는 나에게 달려든 모기떼들이 양쪽 귀를 물어뜯어 벌겋게 부어 올랐다. 너무 가려워서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남편과 나는 성격차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부딪친다. 철두철미한 남편과 변화를 좋아하는 나. 나의 관심사는 남편에겐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고 나도 남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사미 박물관에서도 그렇다. 비 내리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동물가죽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와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나는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시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찍는다. 안내문이 빗방울에 잘 보이지 않자 남편은 수건으로 일일이 안내문을 닦고 찍고 또 닦고 찍고를 반복한다. 철저하다. 그사이에 나는 모기떼에게 나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린 또 아침부터 부딪친다. 그러면서도 10여 년 동안 부부가 같이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걸 보면 역마살이 우리를 엮어주는 끈이 되어주나 보다.

 

사미 박물관 내의 연기 사우나

 

사미 박물관 내의 사미족 의상

사미박물관을 돌아본 것은 의미가 있었다.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문화였고 북극권 라풀란드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는 우리에겐 좋은 자료가 되었다. 사미족의 고유의상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많은 소득(?)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우린 또 티격태격하며 사미박물관을 떠난다. 이제부턴 노르웨이 국경을 향해 달린다.

사미족의 기념품 판매점

북극권 북쪽 안에 핀 들 꽃

구름이 깔리더니 비가 점점 더 세차진다. 쭉쭉 뻗은 원시림 사이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한 줄 외길만이 끝이 없다. 이런 길을 지금까지 열흘이상 달려왔지만 국경을 향해 달리는 마음은 여느 때와는 또 다르다. 긴장이랄까, 기대감이랄까, 서운함까지 뒤범벅이 되어 복잡하다. 더욱이 노르웨이 입국은 의미가 다르다. 점점 지형이 험악해 지며 내리막 길이 계속 된다. 드디어 노르웨이에 다가가고 있었다. 저 멀리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경계가 되어 흐르고 있는 강. 조그만 다리 위엔 한쪽엔 수오미란 팻말이 저쪽엔 노르게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작은 다리를 건너 노르게로 들어왔다. 열흘만에 노르웨이에 입국한 우리. 그동안의 힘듬이 싹 가신다. 우리는 화이팅을 외치며 마음속으로 축배를 들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뿌듯한 마음이 우릴 붕∼∼ 뜨게 한다. 빗속에서 바라보는 노르웨이의 자연. 감개무량했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노르웨이다. 오늘은 최종 목적지인 노르카프까지 갈 예정이다. 자 마지막까지 힘을 내자. 전열을 가다듬는 전사들처럼 우리부부는 힘차게 악수를 했다. 자 출발이다. 마음속으로 팡파르를 울리며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노르웨이 입국후 만난 우리 대학생들

 

대학생들에게 빌려 준 우리가 준비한 텐트

노르카프의 캠핑사이트 카테지를 예약하기 위해 노르웨이 Information 센터와 면세점을 겸한 쇼핑센터로 갔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와 있었다. 나무를 자재로 써서 지은 쇼핑센터 건물이 탐이 나도록 멋지고 품위가 있다. ⓘ센터에서 한국학생 4명을 만났다. 각자 유럽을 여행하다 만났는데 로바니에미에서 렌트카로 노르카프까지 가는 중이라 했다. 그들은 주차해 놓은 우리 차의 2002년 월드컵 코리아 스티커를 보고 남은 게 있으면 달란다. 4장의 스티커를 학생들에게 주었다. 우리는 노르카프 캠핑사이트의 카테지를 예약 했다고 하니 이들은 노르웨이까지 왔다가 노르카프에 대한 정보를 듣고 무작정 떠났다는 것이다. 렌트카 회사에도 소형차는 이미 다 나가고 없어서 중형차를 빌렸다고 한다. 남편이 노르카프 캠핑사이트로 전화를 하니 빈방이 없단다. 마침 우리가 비상용 텐트를 가져온 것이 있어서 그걸 빌려주기로 했다. 우리는 노르카프에서 만나기로 하고 학생들과 헤어졌다. 외롭게 둘이서만 다니다 우리 나라 청년들을 만나니 힘이 솟는다. 마치 응원군이 도착한 영내 분위기처럼 우리기분도 한껏 고조되었다. 날씨도 개이고 든든한 응원군도 있고 신바람이 난 우리도 노르카프를 향해 구불구불 험악한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센터를 출발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길모퉁이 외진 곳에서 교통순경이 우리 차를 세운다. 여행을 시작한지 십여 일 동안 스톡홀름이나 헬싱키 같은 큰 도시가 아닌 곳에서 교통순경을 본 것은 처음이다. 무슨 일인지 우리도 궁금했다. 속도위반이란다. 60㎞가 정속도인데 74㎞로 달렸단다. 남편이 설명을 했다. 지금 막 핀란드에서 왔으며 노르카프를 가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고. 그리고 너희나라의 속도제한을 잘 몰랐고 아직 너희나라 돈으로 환전도 못했다고 장황히 설명을 했다. 노르웨이 경찰은 우리말을 다 듣고 벌금 딱지를 떼어주며 벌금은 카드로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스터 카드로 1,500-노르웨이 크로네(우리돈 약 19만원)의 벌금을 냈다.

그야말로 김이 푹 셌다. 우리 나라도 아닌 이곳에서 교통위반을 할 일이 티끌만치도 없는데 속도위반이라고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충천하던 기분이 구멍난 풍선처럼 폭삭 꺼져버린다. 재수 없어서…. 여기까지 오면서 정화된 마음이 한 순간 돌변한다. 화가 치밀어 속이 부글부글 끊는다. 얼마나 가슴 설레며 달려온 노르웨이인가…. 그리고 이젠 다 왔다는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다니…. 그것도 백여㎞도 아니고 고작 74㎞로 기어오다 시피 했는데…. 심한 배신감에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우리가 교통순경과 옥신각신 하고 있는 중에도 다른 차들은 씽씽 잘도 지나간다.

속도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의 힘듬을 노르웨이에서 위로 받고 싶었는데 위로는커녕 우리 마음을 몰라준 배신감이 분하고 억울했다. 더욱이 이번 여행에서 모험과 도전의 완벽한 성취를 맛보고 싶었는데…. 결국 이 일이 흠집이 된 것 같아서 더욱 화가 치밀었다.

노르카프로 가는 길은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인간을 무시하는 듯한 자연'이라고 한 말대로. 산과 바다와 하늘색과 나무와 눈과 암벽과…. 그리고 피오르드 연안의 아름다운 집들과 바닷가의 배들…. 기막히게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절경을 보면서도 가슴은 얼어붙어 있었다. 감탄사도 숨어버렸다. 그러나 극상의 분노와 극상의 감동이 차갑게 뒤엉킨 느낌의 이율배반이 잔인했다.

노르카프가 있는 섬 혼닝스보그로 가는 페리를 탔다. 학생들이 먼저와 있었다. 우리는 내색하지 않고 기막힌 노르웨이의 절경에 학생들과 같이 감탄하고 있었다. 유럽 최북단의 섬 혼닝스보그로 가는 페리를 50분쯤 타고 가면서 북해의 출렁이는 바다에 마음을 씻으려고 애썼다. 페리에서 내려서 또다시 달린다. 방목중인 순록의 무리들을 수없이 만난다. 허연 눈을 뒤집어 쓰고있는 바위산들. 이정표에 '노르카프 25㎞' 란 사인이 나온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최선을 다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얼어붙은 마음을 애써 녹인다. 노르카프 캠핑사이트에 도착했다. 서울을 출발한지 십삼일만이다. 드디어 왔다. 그리고 해냈다. 성취감에 목이 메인다.

학생들이 도착했다. 캠핑사이트 공터에 텐트를 치는 것을 남편이 도와주었다. 우리는 텐트를 사용할 기회가 되어 좋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기뻤다. 텐트를 치고 학생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나는 쌀을 씻어 저녁 준비를 했다. 오늘저녁은 성찬이 될 것 같다. 자축을 해야 하니깐…. 오늘 밤 12시에 Mid-Night-Sun을 본다. 백야를 보러 온 우리가 아닌가. 마음의 구름이 확 걷힌다. 구름 속에서 태양이 환하게 얼굴을 내미는 기분. 상처받은 마음이 빛으로 바뀐다. 백야의 빛으로….

저녁식사 후 잠시 눈을 붙였다.

캠핑사이트의 술렁이는 분위기에 눈을 떴다. 사람들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카테지를 떠난다. 노르카프로 가고 있었다. 우리도 채비를 차렸다. 오늘 새벽에 핀란드 이나리 호수에서 너무나 완벽한 백야를 보았기 때문에 노르카프의 백야는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스친다. 그러나 우리는 노르카프의 백야를 보기 위해 몇날 며칠을 달려오지 않았던가…. 가슴이 설렌다. 우리도 캠핑사이트에서 13㎞ 떨어진 노르카프로 떠났다.

 

많은 관광객이 들르는 랩족 캠프

 

랩족 남자와 순록

예상대로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간간이 구름이 거치면 태양이 비치다 구름 속으로 다시 숨어버리는 고르지 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노르카프로 가는 길에 랩족 캠프가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랩족이 기르는 순록에 장식을 하고 관광객들과 사진도 찍고, 순록의 뼈, 가죽, 그리고 민예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이곳의 랩족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었다.

 

노르카프 고원의 조각품 "세계의 어린이들"

 

노르카프 고원의 모자 상

노르카프엔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모여있었다. 노르카프는 유럽 최북단의 땅으로 북쪽 곶이라는 뜻이다. 북위 71도 10분 21초에 위치한 곳으로 307m의 절벽이 이곳이 땅 끝임을 말하고 절벽 밑에는 북해 바다가 망망하다. 66도 33분 이북, 북극권 넘어 에서는 여름 일정기간동안 전혀 해가 지지 않는다. 저물기 시작한 해가 수평선 근처를 평행으로 이동해서 또다시 떠오른다. 이 기간동안은 밤에도 어두워지지 않아 어디에서나 한밤중에 태양을 볼 수 있다. 이 때는 커튼을 치지 않으면 너무 밝아 잠은 잘 수 없을 정도이다. 바로 오늘 새벽, 이나리호수 카테지에서의 백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노르카프는 더는 갈 수 없는, 바다가 시작되는 땅 끝에서 바다 위에 떠있는 태양을 본다는 의미가 각별하다. 그래서 여름한철 즉 5월 14일부터 7월 29일까지의 백야를 보러 세계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노르카프의 상징인 지구의 주위의 관광객들

노르카프 위도 표시 71° 10' 21"

307m의 벼랑 끝에는 철망이 쳐져 있고 커다란 지구의(地球儀)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자연경관만으로도 경외스런 곳에서 백야를 본다는 감동. 바람이 몹시 불고 안개가 흩어지고 구름에 가려 숨었다 보였다를 반복하는 태양을 보면서 탄성과 감격에 젖는 사람들. 카메라로 한순간을 포착하려는 사진작가들의 숙연한 표정.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포옹을 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감격의 순간을 새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남편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많은 관광객이 기다리던 구름 사이의 노르카프 백야

"정말 여한이 없어. 노르카프의 백야를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워하는 남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구름이나 안개에 가려졌던 태양이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낼 때면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태양이 구름 속에 숨었을 때의 음영과 얼굴을 내밀 때의 빛의 교차가 경이롭고 신비하다. 땅 끝과 절벽과 바다와 바람과 구름과 태양이 숨바꼭질하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신비에 인간은 한껏 작아지고 세찬 바람에 요동치며 부서지는 북해의 망망한 바다를 보며 자리를 뜰 줄 모르는 사람들….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1996년 여름, 노르카프의 백야를 마음에 새기려는 사람들로 인파는 줄어들지 않고 낯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백야는 이어진다. 꿈을 틀고, 꿈을 키우고, 꿈을 이룬 집념의 붓끝에서 선명한 선하나가 힘차게 그어진다. 그 선을 감동으로 껴안는 나.

아침에 다시 오기로 하고 아직도 훤한 새벽 3시에 캠핑 사이트로 돌아 왔다. 내일부턴 반환점을 돌아 돌아가는 마라톤 선수처럼 이제는 돌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오두막 바깥의 창밖엔 노르웨이 깃발이 펄럭인다. 이젠 눈에 익은 북유럽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다.

[목 차]  [전날 1996년 7월 9일]  [다음날 1996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