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게소에서 만남 초등학교 학생괴 캠프 사이트의 사우나

*1996년 7월 8일 월요일. 갬. (여행 11일째)

 

멕스모-로바니에미, 주행거리 507㎞, 주유량 35.50ℓ, 금액 FIM204-

 새벽 두 시가 넘었는데도 밖이 아주 훤했다. 평소에도 깊은 잠을 못 자는 나는 오늘밤은 잠이 오질 않는다. 아주 멀리 유배 된 듯한 쓸쓸함이 자꾸 감상에 젖게 한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사위는 숨죽은 듯 고즈넉한데 달빛 같은 태양빛이 훤하게 대지를 비취고 있다. 이 같은 생경한 분위기가 묘해서 비디오로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고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다시 낡은 작은 침대에 누웠다.

참 요란한 여행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것 보다 변화를 좋아하는 유별난 성격이 결국 백야여행을 저질렀고 삶은 저지르는 자만의 것이라는 말처럼 뒤늦은 나이의 모험이 때론 버겁기도 하고 때론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면서 이곳 막스모까지 와있다. 저쪽 소파에선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고르게 들리고 아주 멀리 그리고 아득히 와 있다는 생각에 외로움은 밀려오고 잠은 점점 더 멀어진다. 잤다 깼다를 반복하면서 밤을 보낸다. 밖이 너무 밝아서 눈을 떴다. 새벽 4시 30분이다. 일어나 앉아서 조그만 창문으로 훤한 밖을 내다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춥다는 느낌에 뒤척였다.

늦잠을 잤다. 아마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나 보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유배에서 풀려 나듯 오두막을 떠났다. 낮 12시다. 지난밤에 오간 숫한 생각들이 아침엔 다시 할 수 있다는 의지로 모아진다. 빛과 그림자처럼…. 카페에 도착하니 무공해의 통통한 아가씨가 잘 잤냐고 인사를 한다. 보온병을 돌려주며 우리도 아가씨처럼 무공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곤 막스모를 떠났다. 막스모 오두막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은 오울루(Oulu)를 지나 케미(Kemi) 그리고 북극권 코밑의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까지 가는 526㎞나 되는 장거리를 달려야 한다. 벌써 서울을 떠난지 열 하루째이다. 핀란드 고속도로 8번과 4번 그리고 유럽 통합도로 E75를 따라 계속 달렸다. 날씨는 청명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문명이나 인간이란 말이 아득한 원시자연 속을 외롭게 달리는 우리. 호수와 산림과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뿐인 북부 핀란드의 무한한 자연. 우린 제풀에 기가 죽고 빨리 사람냄새 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 어쩌다 나타나는 마을을 보면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에 절로 숨이 내 쉬어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다시 맹목적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도로변 쉼 터에서 차 문을 열고 환기

 

도로변 쉼 터에서 점심 식사

 오후3시쯤 고속도로 파킹에어리어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고속도로 변 슈퍼마켓에서 겨란, 상추, 배추, 토마토, 귤, 쌀, 꿀, 소시지, 정어리젖, 오이피클 등 약 3만원정도의 장을 봤기 때문에 점심식사가 그럴 듯 하다. 불고기와 상추쌈을 곁들인 점심이 우리를 힘나게 한다. 서울서 가져온 밑반찬이 있어서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야채만 사면 식탁이 풍성해진다.

저만큼 떨어진 숲 속 테이블에 어린 소녀4명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점심을 먹고 있다. 내가 다가가니 수줍게 웃는다. 12살이라고 하는 소녀들은 샌드위치와 과일을 펴놓고 먹고 있다. 자연과 늘 함께 하는 어린이들은 보며 어릴 적부터 이런 저런 경쟁 속에 시달리는 우리아이들을 생각하니 이들이 부러웠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자랄 수 있을까? 떠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소녀들의 해맑은 얼굴이 보석 같았다.

오울루의 투오미오 키르코 교회

오울루의 시내 쌈지 공원

 오울루에 도착했다. 어딜 가나 질서정연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들이 늘 부럽다. 그래서 나그네의 미숙함까지도 이들의 여유에 동화되어간다. 이제는 우리도 이곳생활에 익숙해졌고 긴장감도 적어져 우리가 이렇게 멀리와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북구의 여름은 노르웨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고 여행이 일상인 문화여서 우리도 이들처럼 여름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지 한국에서처럼 특별하다거나, 유별난 일을 한다는 생각은 사리진지 오래다.

우리가 백야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 위험하다고 얼마나 말렸던가…. 젊지도 안은 나이에 무모한 짓을 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10여 년 여행 경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 미쳐보고 싶은 열정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두 사람에게는 원초적으로 못 말리는 역마살이 있었다. 떠날 수밖에 없는 역마살이….

우리는 하루 세끼 밥을 해먹고( 외진 곳으로 다니므로 사먹을 시간과 장소가 마땅치 않기도 했다.) 남편과 둘이 다니니깐 잔 신경 쓸 일도, 화장할 일도, 남을 의식해서 옷을 갈아입을 옷도 없고, 여행 그 자체를 즐기며 다닌다. 달리다 힘들면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도 마시고, 경관 좋은 곳에선 쉬면서 잠시 눈도 붙이고, 여행하는 사람들과 정보도 나누고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도하며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로바니에미 인근의 캠핑장의 오두막

물안개 피어오르는 캠핑장 옆의 강가

 내내 흐리던 날씨가 드디어 억수같이 비를 쏟는다. 로바니에미는 제법 큰 도시인데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아서 잠자리가 걱정되었다. 로바니에미를 약 50㎞앞둔 곳에 캠핑 사이트가 있었고 다행이 빈 오두막이 있었다. 숙소가 정해지면 마음이 안정되어 오히려 피곤이 사라진다. 저녁 식사 후 내일 아침식사 준비까지 모두 다 끝냈다. 내일부터는 좀더 일찍 떠나기 위해서다. 도착시간이 늦으면 숙소 정하기가 어려워서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캠핑사이트 내에 있는 핀란드 사우나를 했다.

이 캠핑사이트는 강을 끼고 있어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가랑비로 바뀌면서 강으로부터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캠핑장에는 오두막도 있지만 여행객들이 타고 온 모토홈을 정차해놓고 그곳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고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들도 많다. 물안개가 드라이 아이스처럼 퍼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캠핑사이트를 팔짱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고 산책을 하면서 물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연인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비옷을 입는 채 다정하게 비를 맞으며 얘기하고 있는 젊은 연인들이 하도 아름다워 다가갔다. 노르웨이에서 왔는데 사랑하는 사이이라고 말한다. 결혼은 언제할꺼냐고 우리 식(?)으로 촌스럽게 물어봤더니 어깨를 들썩 들어올리며 웃는다. 그리곤 우리보고 멀리서 왔다며 놀란다. 우리는 노르웨이 노르카프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다. 물안개가 구름처럼 우리주위를 휘감고 지나간다.

오늘도 예정된 일정대로 북극권의 도시 로바니에미 근처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정말 세상 참 좋아졌다. 코리아의 중년도 아닌 초로의 노부부가 자동차로 이곳 핀란드 북극권까지 올 수 있었다니…. 기막힌 일이다. 여하튼 우리는 끝까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자신감이 있다. 그러나 항상 겸손하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여행을 하려고 한다. 다시 비가 개였다. 창 밖의 푸르름이 정말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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