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킹 라인의 이사벨라호로 핀란드 헬싱키로

*1996년 7월 5일 금요일. 비 (여행 8일째)

    헬싱키, 주행거리 43㎞

 새벽 3시. 의자에 앉아 밤을 새우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바이킹라인 예약을 할 때 이미 캐빈 예약이 끝난 상태라는 것을 알았지만 캐빈이 없으면 차 속에서 자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었다. 몸만 달랑 7층 카페로 올라온 후에야 배가 출항을 하면서 곧바로 3, 4층 차고를 잠겨버렸고 헬싱키에 도착하기 1시간 전에 다시 연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올라온 우리는 디스코텍에서 비디오 카메라 바테리가 떨어져서 차안에 있는 바테리를 가지러 가려다가 문이 닫혀있는 사실을 알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남편과 얘기를 하며 긴 밤을 보내려 했는데 12시가 되자 카페는 물론 모든 바와 위락시설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갈 곳이 없었다. 복도 의자에 앉아 시커먼 바닷물을 보는 일 이외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우리처럼 캐빈 예약을 못한 사람들은 복도 의자 두개를 마주보게 하고 준비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 아이들은 밤새 복도를 돌아다니며 소리도 지르고 펀치 볼을 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는 달랑 여름옷만 입은 채 날밤을 세우려니 추워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아침 9시가 되려면 아직 5시간이나 남았다. 차 속에 있는 침낭생각이 굴뚝같았다. 스톡홀름의 추운 날씨 때문에 감기기운이 있는데 오늘밤을 이렇게 새우다가는 병이 날 것 같아서 걷기도 하고 몸을 비틀며 스트레칭도 해보지만 몸은 점점 더 굳어지고 시간은 가지 않고…. 독일 휴게소 화장실에서의 해프닝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열이 나고 머리는 띵하고…. 여행 내내 비와 추운 날씨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큰 병이 날것 같다. 고비를 잘 넘겨야 할텐데…. 또 낯선 문화와 충돌하고 있다. 낯선 것에 대한 안이한 대처가 호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에매한 시계만 자꾸 들여다본다.

헬싱키 대성당

헬싱키의 마켙 광장

정각 9시에 배는 헬싱키에 도착했다. 밤새 고생한 몸과 마음이 천근같다. 그래도 핀란드에 왔다는 사실이 다시 힘을 솟게 한다. 이곳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다행이 예약한 유스호스텔이 핀란드 항 가까이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유스호스텔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고는 아늑한 5층 방을 준다. 방이 마음에 든다. 헬싱키는 스톡홀름에 비해 아주 작은 도시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시티투어를 오후로 미루고 이인호 핀란드 대사와 통화를 하고는 찌부드드한 몸 컨디션으로 오전 내내 잠을 잤다.

시베리우스의 두상

헬싱키의 시베리우스 공원

시베리우스 공원에 도착했을 땐 비가 잠시 그쳤다. 휜란디아의 작곡가 시베리우스(1865∼1957)를 기념한 넓은 공원의 스테인리스 파이프 기념비가 장중하고 기념비 앞의 동으로 만든 시베리우스 초상 릴리프가 눈길을 끈다. 넓은 국토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나라여선지 핀란드는 꾸미거나 기교를 부린 흔적이 별로 없어서 친근감이 간다. 그리고 우직하리만큼 자연그대로의 마음을 담은 여유가 조금함에 배인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바위속의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내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입구

록(Rock)교회도 그렇다. 약간 높은 언덕 밑 바위를 원형으로 파서 만든 교회인데 바위를 깎아 낸 흔적을 그대로 살린 실내가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자연채광과 바위에 부딪히는 울림이 좋아 음악회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도 무반주 성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울림이 청아한 천상의 소리 같았다.

오후엔 햇빛이 났다. 북구에서 처음 본 햇빛이다. 여드레 만이다. 햇볕이 나니 아침에 유스호스텔은 찾아오는 동안 잠시 빗속에서 본 원로원광장 주변이 전혀 다른 분위기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여름이 늦어지고 비가 계속 오고 있어서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이 지쳐있다고 유스호스텔의 남자가 말한다. 신경과민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고. 여름을 기다리던 상점들은 여름옷을 50% 세일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 긴 북구사람들의 짧은 여름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 하지축제의 의미가 대단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헬싱키 한국대사관저 인근의 낙조

 

시티투어를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정성껏 화장을 하고 한국대사관저로 이인호 대사를 찾아갔다. 이인호 대사와 남편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마침 고등학교 여자동창생 두 분이 와 있었다. 남녀 고교동창생들이 모인 저녁식사가 화기애애하다. 참치회. 것절이. 미트볼, 김치, 매운탕, 깻잎, 마늘 장아찌, 콩밥 등 푸짐한 성찬에 포도주까지 곁들이니 긴장과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우리 나라 대사관은 대사관저가 모여있는 고급동네 경관 좋은 바닷가에 있었다. 화장실이 13개나 되는 큰 직사각형 집으로 크고 작은 수납공간이 쓸모 있게 설계된 집이었다. 심플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수수하다. 큰 창고 만한 냉장고도 인상적이었다.

이인호 대사는 하버드 대학에서 러시아 근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으로 핀란드 대사로서는 적격이다. 핀란드 주재 대사들 중에서도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사람이 쉽지 않아서 각국대사 중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이인호 대사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본국의 미진한 지원을 커버하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우리 나라의 큰 재목으로 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인호 대사가 앞으로 주 러시아 대사가 되어 한·러 관계증진에 큰 역할을 할 날을 기대해 본다.

식사 후 이인호 대사와 우리는 한시간 동안 낙조로 물든 바닷가를 산책했다. 대사관 건너편 바닷가에서 대사관을 바라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이 풍경을 비디오에 담았다. 이인호 대사는 김치와 마늘장아찌를 싸주며 핀란드를 종단하여 노르웨이로 갈 우리를 격려해주었다. 서울서 온 남편의 고등하교 동창생들과도 서울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우리는 대사관저를 떠났다.

[목 차]  [전날 1996년 7월 4일]  [다음날 1996년 7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