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가 문신선생을 생각하게 하는 밀레스 가든을 찾아서

*1996년 7월 4일 목요일. 비. 흐림(여행 7일째)

  스톡홀름-헬싱키, 주행거리 58㎞, 주유량 30.00ℓ, 금액 SEK237-

 새벽 3시 30분쯤 눈을 떴다. 바깥이 훤하다. 잠결에 시간을 잘못 봤나 하고 침낭 속으로 쏙 파고들었다. 늦잠을 잤다. 얼굴이 부석부석 부었다. 집을 떠난지 일주일이나 됐으니 고단하기도 할 일이다. 여름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추운 날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 아침준비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어제 만난 수녀님이 인사를 한다. 수녀님은 여전히 씩씩하다. 식당엔 아침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있다. 우리도 오늘은 헬싱키로 떠나는 날이어서 식사 후 서둘러 짐을 꾸렸다. 유스호스텔을 떠나는 마음이 또 섭섭하다. 하루를 머물든, 이틀을 머물든 떠날 때는 언제나 이렇다.

이별의 순간이 지나면 나그네의 관심은 곧 새로운 만남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여행을 순간 순간의 느낌을 즐기며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조각가 밀레스 가든을 찾아갔다.

리딩괴 섬 절벽위의 밀레스 가든 입구

밀레스 가든의 조각 작품들

밀레의 조각공원의 첫 관람객이 된 우리는 내리는 비 때문에 우산을 접었다 폈다를 계속하면서 밀레스의 힘찬 조각들을 감상했다. 이곳에서 남편은 생기를 찾는다. 남편은 조각을 아주 좋아한다. 발트해가 내려다보이는 링게뢰섬 절벽 위에 있는 밀레의 조각공원은 그의 저택을 야외조각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밀레스의 작품 "춤추는 소녀들"

밀레스의 작품 "아가니페 분수"

스웨덴의 조각가 칼 밀레스 (1875∼1955). 위대한 예술가는 정말 나라의 재산이다. 우리 나라의 조각가 문신씨가 떠올랐다. 2∼3년 전 문신씨의 생전의 마지막 조각전이 열렸던 조선일보 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열심히 작품설명을 했었다. 하모니란 주제로 열렸던 그 전시회를 끝으로 그는 6개월 후인 다음해에 타게 했다. 그는 고향 마산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그의 조각공원을 조성해서 마산시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의 꿈이 무슨 이유에선지 무산되었고 그는 타계했다.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을 때는 아주 건강해 보였는데…. 그 후 작품을 도난 당했다는 기사도 신문에서 보았다

밀레스의 작품 "신의 손"

밀레스의 작품 "인간과 페가소스"

발트해가 한눈에 보이는 밀레스 가든에서 힘찬 조각품들을 보면서 우리 나라도 예술가를 키워내는 풍토를 더욱 기름지게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가는 나라의 재산이며 나라의 자부심임을 여기서 또다시 깊이 느낀다. 문신씨에게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던 그때가 생생하다.

드로트닝홀름 궁전

드로트닝홀름 궁전 옆의 중국관

비가 흩뿌리는 거리를 이리저리 돌고 달려서 스톡홀름 근교의 국왕이 살고 있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으로 갔다. 1662년∼1756년에 걸쳐 220실 규모의 궁전이 완성되었다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은 물의 도시답게 바다와 호수가 이어진 물길을 따라 배가 도착하게 되어있었다. 호수에 둘러싸여 있는 궁전은 구스타프 국왕이 살고있는 곳을 제외한 2층과 3층을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왕궁을 들러보면서 스웨덴사람들이 얼마나 왕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존경심은 왕실가족들이 나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동질성에 대한 친근감이 존경심으로 나타난 것 같아서 부러웠다.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왜구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인물인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인물로 해야할 것 같던, 존경하는 인물은 큰 일을 한 인물이어야 할 것 같던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요즈음 우리 나라 사람들은 누구를 존경할까? 아니 존경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삶에서 존경이라는 말이 점점 낯설어져 가는 것은 아닌지…. 평범함의 진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 멋져 보인다.

오후 4시까지는 바이킹라인 선착장까지 와야한다. 6시에 헬싱키로 출발하는 페리를 예약한 우리다. 비는 내리고 떠나야하는 마음은 조급하고 쫓기 듯 왕궁을 출발했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스톡홀름 최고의 뷰포인트인 언덕으로 갔다.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도시, 비오는 스톡홀름 전경을 비디오에 담았다. 다시 오고싶은 스톡홀름이다. 그리고 선착장으로 왔다. 자동차 속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4시10분쯤부터 승선이 시작된 페리를 타기 위해 우리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킹 라인의 항로

바이킹 라인의 이자벨라 호

배 이름은 이자벨라호다. 어마어마하게 큰 이자벨라호는 11층 높이다. 승선한 후 우리는 3층 차고에 차를 두고 7층으로 올라갔다. 배는 헬싱키까지 16시간을 항해한다. 우리는 캐빈예약이 안되어서 밤에는 자동차에서 잠을 자야한다. 배 안 여러 곳의 위락시설을 구경하다가 디스코텍으로 갔다. 디스코텍엔 벌써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넓은 중앙의 홀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출렁이고 무대 위의 여가수는 풍만한 몸을 흔들며 메랑코리한 노래로 흥을 돋운다.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맥주를 마시며 잠시 여행의 중의 휴식을 취한다.

나는 일기장을 꺼내어 비 내리는 거리를 보면서 '나그네' 라는 제목으로 스톡홀름과의 아쉬운 이별을 적는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떠나는 이자벨라호 7층 카페에 앉아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는 스톡홀름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떠나려는 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있는 부두의 나그네를 나도 배 안에서 그의 모습을 내 카메라에 담는다. 이 배는 16시간을 향해해서 내일 아침 9시에 우릴 헬싱키에 내려놓는다.

크고 작은 섬 사이를 배는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며칠 머물면서 익숙해진 도시를 뒤로하고 떠나는 마음이 우수에 젖는다. 메랑코리한 여가수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떠나는 마음을 달랜다. 비행기로 떠날 때와는 달리 배로 떠나는 마음은 애틋하다. 정들었던 정경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거리도, 사람도…. 흩어져있는 멋진 섬들이 내 마음을 자꾸 붙드는데 배는 더 넓은 바다를 향해 소리 없이 나아간다.

떠나는 이자벨라 호에서 밖을 촬영

카프테리아의 오픈 샌드위치

무대 위 여가수의 몸짓과 목소리가 애수가 묻어나고 이별의 아쉬움에 젖은 나그네는 콧날이 시큰해진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란 노래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떠나는 남자의 무정한 마음보다 머물고 싶지만 떠나야하는 애달픈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마음처럼…. 여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자꾸 맥주 맛을 돋운다. 우리네 인생에서 머물고 져하는 마음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지를….

망망대해로 빠져 나온 이자벨라호는 어스름해진 발트해를 항해하고 있다. 시야에 출렁이는 바닷물과 나르는 갈매기 이외엔 아무 것도 들어오는 게 없다. 스톡홀름의 거리도, 건물도, 푸른 섬들도, 금발미인의 늘씬한 모습도, 시커먼 바닷물이 모두 삼켜버렸다.

그래 새로운 시작이다. 꿈과 희망을 가져보자. 헬싱키는 또 어떤 매력으로 내게 다가올까? 정신이 화들짝 든다. 여가수는 라콤바르시타를 부르고 나는 립스틱을 고쳐 바르고 나그네들의 빙빙 도는 춤 속으로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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