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품인 코스타 보다의 유리 작품을 보고 스톡홀름으로

*1996년 7월 2일 화요일. 흐림(여행 5일째)

 

뫼레-스톡홀름, 주행거리 567㎞, 주유량 33.50ℓ, 금액 SEK273-

 여전히 날씨가 흐리다. 아무리 편안한 잠자리라도 여행객은 달리고 있을 때가 오히려 더 편안한지 모르겠다. 어딘가를 향해 가야한다는 숙명 때문인지 모른다. 숙면을 못하는 나는 지남 밤에도 뒤척였다. 김치냄새 때문인가 보다. 서울서 가지고 온 김치가 발효하면서 나는 냄새가 점점 더 고약해져서 도저히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알루미늄 팩에 든 김치 다섯 팩을 사 가지고 왔는데 아껴서 먹느라 이제 겨우 한 팩을 먹었다. 그런데 김치냄새가 솔솔 난다 싶더니 어제부턴 어딜 가나 신경이 쓰일 정도로 심하게 냄새가 났다. 호텔에 들어와서도 냄새 때문에 방으로 들여오지 못하고 밖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에 두고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복도로 나가니 비상계단 쪽에서 쾌쾌한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비닐봉지에 여려 겹으로 싸서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큰 길가까지 나가 휴지통에 버렸다.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했다. 지독한 냄새가 차에, 몸에, 짐에 배여 주위에 신경을 쓰느라 지쳐 버릴 것 같았다. 발효되는 김치냄새는 참기 어려울 만큼 고약했다. 이렇게 김치 때문에 진저리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낯선 문화와 또다시 충돌한 기분. 큰일을 처리한 듯한 후련함에 속까지 시원했다.

오늘은 스톡홀름까지 가는 길에 보다(Boda) 유리공장을 보기로 했다. 벡시외(Växjö)에서 칼마르까지에는 20여개나 되는 유리공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코스타-보다(Kosta-Boda). 오르포스(Orrefors) 등은 세계적으로 유리제품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코스타-보다로 가기로 했다.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생산된 스웨덴 글라스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다.

코스타-보다의 유리 작품

유리 작품 제작 기구들

코스타 -보다 유리공장에 도착했다. 공장은 여름휴가로 문을 닫았고 제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엔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진열대 위엔 개성적인 작품 앞에 디자이너의 사진과 이름이 붙여있다. 유리로 이렇게 다양한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독특한 디자인이 멋지다. 고가의 작품들은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튀지 않고 은근하면서 속 깊은 고향친구 같은 스웨덴의 이미지에 점점 더 호감이 갔다.

이제부턴 스톡홀름을 향해 계속 북상을 한다. 스톡홀름의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하여 예약을 확인했다. 숙소가 정해지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편안한 마음으로 E22 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젠 여행에 많이 적응이 되었고 스웨덴의 자연과 풍물,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의 삶도 엿보며 우리도 서구사람들의 일상인 여행 속으로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경관 좋은 곳에선 차를 멈추고 쉬기도 하고 고속도로변의 파킹에어리어에서 사람들과 얘기도 하는 여유를 즐긴다.

'인생은 저지르는 사람만의 것이다' 라는 말처럼 백야를 보고싶다는 오랜 꿈을 저지르기 위해 많은 노력과 준비를 해왔다. 더 늙기 전에 모험과 도전을 해야한다는 명제 앞에서 할 수 있다는 자성예언을 수 없이 했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때마다 꿈은 조금씩 조금씩 현실로 익어갔다.

날씨는 아직도 오락가락 일정하지 않지만 북유럽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우리도 서둘지 않고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니 여행이 오히려 순조롭다. 흩뿌리던 비가 개이며 선명하게 쌍무지개가 뜬다. 쌍무지개를 보다니…. 나는 좋은 징조라며 환성을 질렀다. 드넓은 자연 속에서 보는 쌍무지개의 영롱함이 그대로 희망으로 이어진다. 스톡홀름을 향해 달렸다.

스톨홀름 시청

스톨홀름의 대광장

스톡홀름의 유스호스텔은 비교적 시내에 있어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 했었다. 그런데 역시 였다. 스톡홀름은 대도시다. 낯설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 한 것이 없다. 텃새처럼 호된 대가를 치른 후에야 우릴 받아준다. 또 헤매기 시작한다. 몇 번을 돌고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을 했다가 나와서 물어보고 또 시도 해보는 반복을 눈물나게 거듭한 끝에 밤 8시 30분쯤에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바이킹라인의 예약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더니 OK란다. 다음일정의 큰 매듭을 지었다는 안도감. 도착하면 떠날 준비, 떠나면 다시 도착할 준비를 반복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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