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스코네 지방의 아름다운 고성 3곳을 찾아서

*1996년 7월 1일. 월요일. 흐림(여행 4일째)

 

코펜하겐-뫼레, 주행거리 429㎞, 주유량 25.50ℓ, 금액 SEK180-

게스트 하우스에서 8시 30분에 출발했다. 기온은 섭씨 14도. 오늘은 스웨덴 으로 간다. 스웨덴으로 가는 페리가 에어슨 해협을 건너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서 서둘러 출발했다. 페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페리아(Oferia)란 이름의 하얀 배가 자동차들을 싣고있었다. 우리도 줄 맨 뒤에 섰다. 꿀꺽 꿀꺽 자동차를 삼키던 배가 바로 우리 앞에서 입을 꽉 다문다. 제복을 입고 페레에 차를 싣는 일을 지휘하던 뚱뚱한 아저씨도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페리아라는 배는 꼬리에 휜 거품을 뿜어내며 멀리 사라진다. 텅 빈 선착장에 덩그렇게 남겨진 우리. 연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이럴까? 서둘러 온 마음이 무참해져서 화가 치민다. 호락호락 할이 없는 여정이라고 각오는 했지만 한국식의 조급증이 또 발동을 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다음 페리가 올까?

에어슨 해협을 건느는 스카니아 호

스카니아 호 선상

스카니아(Scania)라는 예뿐 이름의 페리가 도착한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30분 후였다. 페리를 보자 다시 기운이 솟는다. 아까 그 뚱뚱한 남자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그 남자의 안내로 우리 차를 선두로 차들이 페리에 오르기 시작했고 자동차를 잔뜩 실은 배는 스웨덴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외례순 해협을 기분 좋게 항해한 배는 50분만에 스웨덴의 림함(Limhamn)항에 도착했다. 아침 11시 15분. 스웨덴 땅을 밟았다. 벌써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를 거쳐서 스웨덴까지 왔다. '정말 멀리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이번에도 패스포드를 보자는 어떤 제스추어도 없이 그냥 세관을 통과했다. 역시 싱거운 스웨덴 입국이다.

흐리고 간간이 비를 뿌리는 고르지 못한 날씨이지만 고른 것은 넓은 초원과 푸른색 일색의 자연과 새로움에 도전하는 우리의 의지뿐이다. 끝없이 넓고 푸른 전원, 차원이 다른 세계에 온 듯 풍요로운 스웨덴 남부 스코네(Skåne) 지방의 푸른 지평선을 보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남부 스웨덴의 풍요로운 스코네 지방엔 250여 개의 고성이 있다고 한다. 중세 때 영주들이 많은 고성을 지었고 그 고성들은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말뫼(Malmö)에서 15Km 떨어진 토루프(Torup) 고성을 찾아가기로 했다.

토루프 성

토루프 성의 부속 건물

16세기의 고성 토루프는 조용한 숲 속에 꿈을 꾸듯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렇게 비를 맞고 있었다. 너도밤나무 숲에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부드럽고 우아한 토루프 성은 잘 가꾸어진 정원과 고성이 어우러져 꿈속인 듯 신비스럽다. 중세 영주의 연회가 얼마나 화려했을까? 상상해본다. 풍요의 곡창지대인 스코네 지방의 축적된 부의 유산으로 고성을 후세에 남긴 중세영주들. 스웨덴 첫 방문지 토루프 고성의 우아함과 스웨덴의 분위기에 나는 점점 매료되어갔다. 여행은 늘 아쉬움을 안고 다닌다. 떠나는 마음을 붙드는 토루프성을 뒤로하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스바네홀름(Svaneholm)성으로 갔다.

스바네홀름 성

스바네홀름 성의 붉은 벽돌 벽

호수를 끼고 있어 백조의 성이라고 부르는 정적에 쌓인 고성. 지금은 민속박물관이 되어 중세 스코네 지방의 생활상을 나그네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고성을 더욱 은은하게 보이게 한다.

스웨덴 스코네 지방의 자연은 엄마 품처럼 푸근하다. 3년 전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시베리아의 자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비가 뿌렸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날씨 때문인지 목가적이고 고즈넉한 정취가 잔잔한 수필 한편을 읽은 듯 따뜻하다. 이미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었고 밀레의 만종이 연상되는 풍경 속의 글리밍게후스(Glimmingehus) 성으로 갔다.

글리밍게후스 성

글리밍게후스 성의 내부

이 성은 스웨덴 지폐 20크로네 뒷면에 그려진 성이다. 1499년에 축조되었다는 성은 아주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성벽의 두께가 2m나 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영주의 땅이 얼마나 광대했던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스코네 지방의 고성을 보고 싶었지만 여기서 끝내야 하는 아쉬움을 여행의 여백으로 달랜다.

이곳은 위도 상 여름엔 밤11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곳이므로 칼마르(Kalmar)까지 가는 도중에 유명한 유리공장을 들러 보려고 E22번 도로를 따라 북상했다. 그러나 글리밍게후스 성에서 너무 늦게 출발했고 오늘밤 잘 곳이 정해지지 않아서 아무래도 불안했다. 코스를 바꿔 칼마르쪽으로 곧장 가기로 했다. 오늘은 스톡홀름(Stockholm)으로 가는 길목 어디선가에서 자야한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날은 아직 훤했지만 숙소 때문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를 더 달려야 마을이 나올까? 고속도로변에 캠핑사이트나 유스호스텔이 있을까? 그러나 어떤 표시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달렸다. 저 만치 호텔 사인이 보인다. 반가웠다. 오늘밤은 캠핑사이트가 아닌 호텔에서 여행객으로서는 과분한 스웨덴에서의 첫 밤을 보내야 될 것 같다. 역시 호텔요금은 상당히 비쌌다. 비싼 호텔요금만큼 잠이나 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코펜하겐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해서 이곳까지 오늘은 567㎞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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