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삼키는 카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덴마크에 가다.

*1996년 6월 30일 일요일. 맑음(여행 3일째)

 

뤼백-코펜하겐, 주행거리 319㎞, 주유량 28.60ℓ, 금액 DKK193-

날씨가 개였다. 한 여름인데도 네덜란드도 독일도 우리 나라 겨울날씨처럼 춥다. 이상기온 인지는 몰라도 스웨터에 잠바까지 입었는데도 춥다. 유스호스텔에서 아침 7시에 식사를 했다. 독일 사람들의 검소함, 철저함, 그리고 합리성과 질서의식 등을 배운다. 유스호스텔에는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묶고 있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도 조용함은 물론 빵 부스러기나 음료수를 흘리거나 남기는 일없이 깨끗이 먹은 다음, 한편에 있는 행주로 식탁을 말끔히 닦는다. 그리고 앉았던 의자를 들어올려서 테이블 밑에 장치된 의자걸이에 의자를 걸어놓는다. 바닥에서 일정거리를 띄어놓게 되어있어서 바닥 청소하기가 쉽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식사를 한 뒤임에도 식당은 깨끗해서 뒤처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이처럼 공동생활의 예절과 질서를 몸에 익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공공장소에서 떠들며 무례한 짓을 해도 나무라지 않는 우리 나라 젊은 엄마들 생각이 났다. 교육의 힘, 독일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뒷마당엔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길 속에서 흙 장미색 오펠 자동차의 앞과 뒤 그리고 좌, 우 문에 한국에서 가지고 간 커다란 2002년 월드컵 코리아 스티커 4장을 붙였다. 아이들이 다가와 구경을 한다. 어제 그렇게 웃어대던 아이들이다.

뤼벡까지 오는 이틀간의 워밍업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백야를 보러 가는 북유럽 여행이 시작된다. 스티커를 붙이고 떠날 차비를 마쳤을 땐 아침 8시가 넘었다.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에 기온은 섭씨 14도. 우리는 덴마크를 향해 출발했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아우토반을 달린다. 한시간쯤 달려 풑트가든(Puttgarden)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코펜하겐으로 가기 위해서다. 질서 정연하게 서있던 차들이 한대씩 배에 오른다. (카페리 승선비는 우리돈 약 55,000원인 100독일 마르크를 지불했다.) 앞으로 수없이 탈 페리다. 배 안 카프테리어에서 커피와 단 케이크를 먹으며 발트해의 찬바람을 맞는다.

덴마크행 카페리 선상

 

50분만에 페리는 덴마크 뢰드비 하븐(Rødby Havn) 항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30분. 세관원이 여권을 확인하고는 "Have a nice tour!" 하며 씩 웃는다. 여권에 입국 도장이라도 찍어줄 줄 알았다는데 그냥 가란다. 또 싱거운 입국이다. 김 빠진다는 생각도 잠시뿐 코펜하겐으로 가는 E47번 도로를 타야 한다. 독일의 굳은 날씨와는 달리 화창하게 개인 하늘과 편편하고 넓은 전원이 독일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덴마크에 온 우리는 비로소 여행을 즐기는 여유를 찾았다.우리 나라처럼 혼잡하지도 않고 도로상태도 좋고 차의 승차감도 좋고 무엇보다도 질서를 지키며 남을 배려하는 이들의 여유에 익숙해지면서 서두르고, 신경곤두 세우고, 약삭빨라야 할 것 같은

서울 식(?) 계산에서 벗어나 우리도 느긋하게 이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며칠만에 보는 햇빛과 차창 밖 풍경이 하도 상쾌해서 몸과 마음이 샤워를 한 것 같이 개운하다.

이제부터 코펜하겐의 유스호스텔을 찾아가야 한다. 언제나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it 21로 빠져 나와 코펜하겐 시내로 들어가려 했는데 한눈에 잘못됐음을 알았다. 돌고 돌아 E47번 도로를 다시 타고 헬싱괴르(Helsingør) 쪽으로 더 가서 Exit 21로 다시 빠져 나왔다. 거기서 211번 도로를 타고 코펜하겐 시내 후레드릭 거리중심까지 왔다. 그러나 예약을 한 유스호스텔은 보이지 않았다. 외곽으로 빠져 나온 듯 했다. 다행이 일요일이어서 거리는 한산했고 자전거 도로 옆에 주차를 할 수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었지만 초행길이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벌써 두 시간을 허비했다.

짜증이 나려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택시를 잡고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타란다. 내가 탄 벤츠택시 뒤를 남편이 따라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괜한 시간만 낭비했다. 84덴마크 크로네(우리돈 약 12,000원)를 택시 값으로 지불했다. 언덕 위 외진 곳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베낭족 젊은이들로 벅적거렸고 리셉션에 있는 금발의 늘씬한 아가씨가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우릴 반긴다. 이름을 내밀었다. 보조개가 예쁜 아가씨는 당신의 Fax를 받고 곧 회신을 보냈는데 못받았느냐며 방이 없단다. 아가씨는 근처에 있는 Guest House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요만큼의 여력도 없는 나는 주저 앉고 싶었다. 아가씨는 우리마음을 읽은 듯 아주 가깝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다 표시를 해 준다. 긴 여행의 시작인데 이 정도에 지치면 안되지…. 힘을 냈다.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도 골목이나 거리표시의 사인을 나보다 훨씬 잘 본다. 더욱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덴마크 알파벳은 편하게 미국식으로 읽으며 찾아간다. 돋보기를 쓰고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를 보기 위해 확대경까지 목에 걸고 있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남들은 저 나이에 왠 극성인가? 하고도 남을 일이다. 힘들어도 찾아가자.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깐….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한가한 주택가를 이리저리 돌아서 허름해 보이는 목조 울타리가 있는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벨을 누르니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할머니 뒤를 따라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지쳐 보인다. 어떤 상황이 되든 오늘은 이 집에서 자야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너무 지친 우리다. 방을 보고 나온 남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코펜하겐의 민박 집 내부

 

인어공주 상

방은 생각보다 아주 훌륭했다. 하룻밤 잠만 자는데 210 덴마크 크로네(D.K) 이니깐 우리 돈으로 약 3만원 정도이다. 물론 아침은 포함되지 않고 방 옆에 있는 부엌에서 해 먹으면 된다. 제법 크고 깨끗한 거실엔 소파와 TV, 냉장고가 있고 울창한 나무숲이 내다보이는 큰 창문틀엔 청록색 도자기들이 놓여있다. 거실 정면 벽엔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걸려 있고 거실 옆 작은 침실의 투인 베드엔 청색 바탕에 색색의 잔 꽃 무늬가 화려한 침대보가 포근한 느낌을 준다. 숙소를 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남편의 지친 표정이 조금씩 밝아진다.

떠도는 나그네는 지쳐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것은 체질이고 운명이다. 짐을 방으로 옮겨 놓고 인어공주가 있는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처음엔 동네 주위를 몇 번 돈 후, 차츰차츰 더 넓고 큰 거리로 나갔다가 돌아오고 지도에 체크를 하며 길을 익히고 다시 출발하고를 거듭하면서 인어공주가 있는 바닷가까지 갈 수 있었다. 수줍은 듯 다소곳이 앉아있는 인어공주를 만났다. 반가웠다. 코펜하겐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와 며칠 묶을 예정이다. 인어공주를 탄생시킨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를 가기 위해서다.

인어공주가 있는 바닷가 넓은 공원엔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6월 30일인데도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쌀랑했다. 공원에서 웃옷을 벗은 채 땀은 뻘뻘 흘리며 춤을 추듯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노인과 신나게 쌩쌩 달리며 스케이트보드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모습을 나는 여행객이라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인어공주와 노인과 어린이와…. 한편의 멋진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도로변 길가에 세워 둔 자동차들마다 앞 유리창에 종이시계가 붙어있다. 시계는 각각 몇 시, 몇 분을 다르게 가리키고 있었다. 자기가 돌아올 시간을 알리고 있는 시민들. 합리적인 시민의식과 남을 배려하는 사고가 부러웠다. 코펜하겐의 첫 인상이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인가 보다.

일요일인데도 24시간 문을 연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잔뜩 사 가지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TV를 켰다. 흥겨운 화면이 뜬다. 푸른 숲 속, 작은 무대, 흰 드레스를 입은 수수한 여가수가 아코디언과 기타반주에 맞춰 느린 템포의 노래를 부른다. 무대 주위엔 노인들이 손뼉을 치며 즐겁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우리 나라의 가요무대 같다. 그러나 스튜디오가 아닌 자연에서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다. 나는 텔레비전을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젊은이 위주의 프로그램편성이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요즘 쇼프로에 나오는 가수들은 낯선 얼굴들이 많고 멜로디가 너무 빨라서 가사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다. 드라마도 너무 억지스럽거나 지나치게 악을 쓰며 오버하는 장면이 많아서 가끔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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