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찾지 못하고 독일의 아우트반을 처음 달린다.

*1996년 6월 29일 토요일. 비(여행 2일째)

 

소에스트-뤼백, 주행거리 527㎞, 주유량 30.56ℓ, 금액 DEM51-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은 독일 뤼백(Lübeck)까지 가야한다. 500㎞을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 시작되는데 굳은 날씨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어제 슈퍼마켓에서 산 빵, 치즈, 소시지, 햄, 커피, 우유로 든든히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출발했다. 기온은 섭씨 13.5 도. 출발 할 땐 조금 개이는 듯 하더니 다시 세찬 비가 내린다. A1 고속도로 변의 농촌풍경이 빗속에 고즈넉하다. 이곳도 장마철인가? 서울서부터 내가 비를 몰고 왔나? 왠 비가 그리도 쏟아지는지 잔뜩 긴장한다.

우리의 흑장미색 오펠 아스트라는 작지만 잘도 달린다. 140㎞이상을 달리는데도 흔들림 없이 승차감도 좋다. 작지만 이렇게 다부진 차를 우리는 만들 수 없을까? 좁은 한국의 도로사정을 생각해서라도 큰 차를 선호하는 허세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될텐데…. 다음엔 작고 다부진 이런 유럽차로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는 정말 산 하나 없는 편편한 나라다. 푸른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전원풍경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A1 도로를 달리다 34번 Exit로 빠져 나와 두 시간이상을 더 달렸다.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독일 세관이 보일 때까지 달렸다. 그러나 막상 독일 국경을 지날 땐 세관 건물로 보이는 길다란 건물이 오른쪽 길가에 있을 뿐 세관원이나 차단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국경을 넘는다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싱거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국경 아닌 국경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우리 나라. 우리의 삼엄한 국경(?)은 냉전시대의 상징물로 아직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걸까? 아니면 세계 유일의 이념박물관으로 고착해 놓고 싶은 걸까? 이곳은 EU국가. 첫 국경을 통과하며 서글픈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서서히 여행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독일 오스나브릭(Osnabrück)까지 달려 다시 브레멘(Bremen)쪽으로 A1 도로를 타고 올라갔다. 어느새 날씨는 가랑비로 바뀌고 구름이 무겁게 깔려있었다. 고속 도로변 파킹 에어리어에 주차를 했다. 굳어진 어깨도 풀고 긴장도 풀기 위해서 지만 더 급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계속된 긴장과 달라진 음식 탓에 속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침에 먹은 빵과 우유가 탈이 난 것 같다.

독일 고속 도로 변의 쉼 터

 

휴게소 공중 화장실에서 급한 볼일을 보았다. 그러나 화장실엔 아무리 들러 보아도 물 내릴 장치가 보이지 않았다. 좌변기 이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난감했다. 어떻게 하지…. 다시 찬찬히 살펴봐도 좌변기만 덩그러니 있다. 화장실 밖에선 들어간 동양여자가 소식이 없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말로 웅성거리며 문을 두드리고 노크를 하며 야단들이다.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대책 없이 있을 수도 없고 진땀만 흘리고 있었다. 10분, 15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당황해서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맸다. 어떡하지? 용기를 내서 그냥 나가버려? 그럴 수는 없지. 동양여자의 야만적인 행동에 얼마나 흉을 볼까? 내 등에 코리아라고 써 있는 것 같아서 도저히 그냥

나갈 수 가 없었다. 20분이 지났다. 이런 위기에 남편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기에 나를 찾지도 않는담…. 앞이 캄캄했다

"여보! 왜 안나와! 무슨 일이야?"

남편의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살았다. 응원군이 왔다.

"물이 안 나와서…" 나도 소리를 질렀다.

"그냥 나오면 돼…" 남편이 소리쳤다.

그래 그냥 나가보자. 알게 뭐람. 배짱이 생겼다.

화장실 문을 확 여는 순간

"쏴…"

물 쏟아지는 소리가 폭포수처럼 들려왔다. 많은 눈들이 등뒤에서 쏘아보는 것 같아서 마구 뛰었다. 독일의 고속도로변 화장실은 최신식의 전자동 장치여서 일을 본 후 문을 열고 나오면 자동적으로 물이 쏟아져 처리되게 되어 있었다. 독일의 공중 화장실에서 두 번째 낯선 문화와의 충돌을 한 나는 넉 아웃되고 말았다.

"바보같이…" 원자폭탄 같은 남편의 화가 터졌다. 나는 지치고 지쳤고, 창피하고 끔찍해서, 원자폭탄이 터져도 멍해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여튼 나는 기계치라니까….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화장실 문에 무슨 그림인지, 글자인지가 그려져 있었던 것 같았다. 일을 보고는 물을 내린다는 고정 관념 때문에 나는 여행 첫 관문에서 호되게 당하고 말았다. 언제쯤이나 여유가 생길런지….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우리는 함부르크(Hamburg) 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바람까지 부는 추운 날씨에 두툼한 외투생각이 절로 난다. 뤼벡까지 가는 아우토반에는 세찬 빗속에도 휴가 떠나는 각종 차들이 많았다. 캬라반, 모토-홈, 오토바이. 자전거 등에 짐을 잔뜩 싣고 간다. 더러는 자동차 위에 자전거를 싣고 가기도 하고 모토-홈 위에 자전거를 싣고 뒤에는 자동차를 매달고 가기도 한다. 무제한 속도로 달리는 아우토반이지만 차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린다. 여름 휴가철 교통체증으로 짜증나는 우리의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여기는 별천지다. 여유 있고 질서 정연한 흐름이 상쾌함을 준다. 독일의 농촌도 그림같이 아름답다. 오후 4시가 넘어 뤼벡에 도착했다. 뤼벡은 생각보다 크고 오래된 도시 같았다.

예약을 한 유스호스텔을 찾아가야 한다. 미처 지도를 준비하지 못했고 토요일 오후라 거리는 한산했다. 소에스트처럼 작은 마을이 아니어서 어림잡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공을 들고 지나간다. 유스호스텔을 물었더니 약도를 그려주며 교차로까지 우리를 데리고 와서 방향을 가르쳐준다. 작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다보니 더 헷갈렸고 점점 엉망이 되었다. 큰길로 나와 차를 세우고 궁리를 하고있는데 저 만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는 순간 아까 그 소년이 뛰어내린다. 집에 가다가 우리를 보고 내렸다며 다시 길을 가르쳐 준다. 그 길을 따라 갔으나 유스호스텔은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주유소에서 시내 지도를 사고 길을 물으니 기름을 넣으러 왔던 손님이 앞장선다. 유스호스텔은 아주 가까운 곳 숲 속에 있었다. 태극선 부채를 선물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약 2시간을 헤맨 끝이었다. 리셉션에 있던 아가씨가 우리의 FAX를 받았다며 가족실을 준다. 이층침대와 손 씻는 세면기가 있는 작은 방이다. 오늘은 527Km를 달렸다.

뤼백 유스호스텔의 정문

뤼백 유스호스텔이 앞 마당

여행의 긴장과 장거리 운전으로 몹시 피곤해 보이는 남편을 보며 2층에 있는 방까지 짐을 옮기는 일은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도 코펜하겐(København)까지 장거리운전을 해야 하는 남편이 어깨가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다. 뒤뜰에다 차를 세운 우리는 잠시 실랑이를 벌렸다. 내가 짐을 옮기겠다느니, 남편은 괜찮다느니, 서로 우기다가 남편이 화를 내며 작은 가방을 어깨에 매고 유스호스텔 안으로 휘익 들어갔고 나는 큰 가방 2개를 양손에 들고 낑낑거리며 뒷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와...' 뒤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한 무리의 보이스카웃 소년들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웃고 있다. 나도 그들의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따라 웃었다. 2층 방에다 짐을 두고 내려와 나머지 짐을 들고 가려는 순간 다시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많은 보이스카웃 학생들이 저녁 식사 전 뒤뜰에서 잡담을 하며 놀고 있다가 동양인 부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웃음이 터져 나왔나 보다. 허기야 전후 좌우 사정을 알리 없는 그들로서는 남자는 그냥 가고 여자는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가는 모습을 보며 동양인들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고 웃었을 게다. 이번엔 독일 아이들이 잘못 안 낯선 문화와의 충돌을 느꼈을 것 같다.

방에 들어와 남편에게 얘기를 하며 우리도 한바탕 웃었다. 문화의 차이가 여행의 양념이 될 때도 있다. 피로가 풀린다. 라면과 김치, 누룽지와 장조림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꿀 맛이다. 속도 편하고…. 늦은 시간에 택시로 유서 깊은 뤼벡 시내를 돌아보았다. 꽤 크고 볼거리도 많은 도시인데 운전기사가 독일어로 설명을 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내 호텔에서 맥주한잔을 마시며 뤼백의 분위기에 젖어보았다. 아우토반 쉼 터 화장실에서의 해프닝이 또 우릴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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