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여행을 시작하는 설레이는 첫날이다.

*1996년 6월 28일 금요일. 비(여행 1일째)

서울 김포 공항-암스텔담 스키폴 공항

장마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6월 28일 아침. 6개나 되는 큰 짐 보따리를 차에 실었다. 만만치 않을 이번 여행을 예고라도 하듯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비가 출발하는 마음을 움츠려들게 한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떠나려는 순간, 불안과 기대가 교차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번쩍 번개가 치더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천지를 뒤흔든다. 할 수 있어…. 해낼 거야….

6시 30분, 우린 출발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공항청사는 해외여행 떠나는 사람들로 대 혼잡이다. 돗대기 시장 같은 공항에서 10시 5분 출발이 가능할까? 이젠 우리 나라도 이정도의 수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사이판 행 JAL을 기다리던 89년 여름의 일본 나리타공항이 떠올랐다.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일본의 젊은이들로 넘쳐나던 공항풍경을 보며 부러워하던 그때가….

떠밀리듯 비행기에 탑승을 했을 땐 이미 출발 시간이 지나 있었다. 10시 25분, 마드리드행 비행기는 만원인 승객을 싣고 드디어 이륙했다. 휴유!!! 한 숨을 돌린다. 떠나기 전까지 복잡했던 심정이 안정을 찾으며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따라준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늘 그랬던 것처럼 "이제 여행이 시작됐구나"하는 기분 좋은 흥분이 일었다.

비행기안은 배낭여행 떠나는 학생들로 꽉 찼다. 여행안내 책을 읽거나 노트에 열심히 메모하는 학생들로 만원인 기내는 꼭 대학도서관 같다. 기내의 이런 분위기가 모험과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 학생들을 보며 나도 힘을 낸다. '그래! 잘 할 수 있을 거야!' 자성예언을 반복한다. 비행기는 3년 전 시베리아 행단 철도 여행을 했던 북반부 상공을 나르고 약간의 알코올 기운에 자신감이 생긴다. 여행에만 전념하자.

 

*1996년 6월 28일 금

 

 스키폴 공항-소에스트, 주행거리 73㎞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그 많던 학생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공항청사에 덩그렇게 남은 우리부부는 렌트카 사무실을 찾아갔다. 예약번호를 보여주니 바로 차를 내준다. 1,600㏄ 흑장미색 오펠 아스트라로 11.000㎞를 뛴 차다. 네덜란드 차라는 표시인 NL이 번호판 옆에 붙어있다. 유럽 북쪽 땅끝 노르웨이의 노르카프까지 갔다가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는, 33일 동안 일만㎞이상을 달려야 하는 힘든 여행을 같이 할 새 식구다. 맥주 한 캔을 따서 차 위에 올려놓고 한 식구가 된 것을 반기는 의식(?)을 치른 후, 차에 맥주를 주욱∼ 부었다.

우리부부의 오랜 꿈인 백야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눈앞의 흑장미색 자동차를 보며 차분하게 의지와 각오를 다진다. 여행 첫날의 자신감이 순조로운 여행의 청신호가 됨을 아는 나는 아랫배에 힘껏 힘을 준다. 자!!! 시작이다.

50㎞ 떨어진 소에스트(Soest)라는 작은 시골마을 유스호스텔까지 가야 한다. 전화로 예약이 됐음을 확인하고 출발했다. A4-A9-A2-A1-10Afrit -Soest 라는 고속도로 표지판을 지도에 표시했다. 주말 오후여서 차가 많이 밀리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긴장 속에서 소에스트까지 오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주유소에서 유스호스텔을 물으니 그림을 그려주며 친절이 가르쳐 준다. 지그재그로 신호등을 지나 좌. 우회전을 거듭하며 작은 소로까지 왔으나 유스호스텔을 찾지 못했다. 다시 되돌아와 작은 식당에서 물었다. 유스호스텔이라는 글씨 대신 NJHC라는 약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놓쳤던 것이다. 숲 속에 나무와 오두막이 그려진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소에스트의 유스호스텔

소에스트 시내의 거리

기대에 못 미치는 썰렁한 유스호스텔 분위기에 실망했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인다. 낡은 건물과 시설에 비해 내부는 정갈하고 깨끗했다. 그 많은 짐을 방에다 옮겨놓고 시내로 나갔다. 작은 시골이라 거리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사람들도 순박해 보인다. 우뚝하게 높이 솟은 건물도 없는 소박한 거리를 걷는 마음이 스르르 편안해진다. 편안한 마음이 서울을 떠나면서 흔들렸던 심리적 불안감을 진정시켜 주었다.

소에스트의 거리엔 자전거 전용도로가 보도 옆에 따로 있었다. 자전거 도로라는 것을 모른 나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걷다가 몇 번의 실수를 했다. 뒤늦게 그 길이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미안했던지…. 낯선 문화와의 첫 충돌이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웃으며 친절히 가르쳐 준다. 중국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오늘 저녁은 중국음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서 식료품을 샀다. 장을 보는 사람들은 슈퍼마켓의 카트에 동전을 넣고 정리대에 가지런히 놓인 카트를 뽑아 사용한 후에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고는 카트에서 동전을 뽑아 간다. 많은 카트들이 정리대에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또 가방을 가지고 와서 산 물건을 담아 간다. 비닐 봉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절약과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의 의식이 퍽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목 차]  [다음날 1996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