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이스라엘의 자연과 역사

1996년 2월 6일 화요일 맑음(여행 3일째)

에루살렘-에리고-베트 샨-티베리아-나사렛-하이파-텔 아비브-예루살렘 주행거리 404㎞

 오전 8시에 민박집을 출발을 출발 어제 마사다를 갔던 길을 따라 1번 국도에 진입, Sea Level 기념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을 남기고, 바로 출발 내리막 국도를 따라 아르모그에서 좌회전하여 90번 도로로 진입했다. 예리고는 90번도로를 잠시 달리니 나타났다.

  예리고는 해면 아래 350m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도시이다. 옛부터 오아시스 도시라고 불려졌으며, 이곳에는 1만년 이상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구약 성서 시대에는 "종려나무의 마을"이라고 불렸다. 지금부터 3,000년 전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 동안 시나이 사막을 방황한 끝에 모세의 후계자인 요시아의 지휘 아래 대망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공격하여 얻은 도시가 예리고이다. 신약성서에도 예수가 이따금 이곳을 지나 갔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무렵의 유태교 시나고그의 흔적도 남아있어서 예리고에 유태인 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예리코 인근의 히샴 궁전의 유적지

잘 보존된 히샴 궁전의 모자이크

 우리가 예리고에 들어가니 마침 라마단 기간이라 대낮인데도 한산하고, 길을 메운 양떼를 기다리느라 잠시 차를 세우고 하샴 궁전으로 가는 길을 검토했다. 하샴 궁전은 8세기에 세워졌다는 옴미아트 왕조의 궁전 유적으로 세워진 후 바로 지진으로 묻혀 버렸기 때문에 모자이크 등이 대단히 아름답게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에서도 손님 방의 바닥 모자이크에 감탄을 하고, 주위의 유적에서 당시의 체취를 간직하고 오전 9시40분에 베트 샨을 향하여 떠났다.

  베트 샨은 대단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오랜 것으로 기원 전 4,000년이나 되는 옛날의 유적이 발견되었고, 기원 전 19세기 무렵의 이집트 문서에도 베트 샨 이란 이름이 나와 있다. 에즈렐 평야으 동쪽  끝, 이집트로 가는 대상들이 다니던 길 중도에 있어서 고대로부터 군사 및 경제상 중요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도시 외곽에 있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은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원형극장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

지금도 발굴 중인 베트 샨의 유적지

보존 상태가 좋은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우리는 도시의 유적을 돌아 본 후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83년 9월말에 돌아 본 리비아 사브라타의 원형극장에 버금 가는 극장으로, 마침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미국 단체 관광객이 우리의 렌트카에 붙은 Hertz 표시를 보고 자기 나라 국적의 렌트카 회사임을 알고 우리를 반갑게 대했다. 극장으로 들어가니 무대에는 현지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어, 지금도 공연장으로 사용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전 11시 45분 베트 샨을 떠나 티베리아로 향했다.

티베리아의 갈릴리 호수

 

 티베리아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 안테파스에 의해 기운 전 18년에 세워졌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라고 이름지었다. 처음에는 로마적인 이 도시에 살려고 하지 않던 유태인도 살게 되었고, 특히 예루살렘이 망하고 부터는 유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200년 무렵에는 이곳에서 랍비 유프타 하나에 의하여 성전 마사나의 편찬이 이루어 졌고, 400년에는 에루살렘 탈무드도 완성되었다. 지금도 많은 유태인이 티베리아 가까이 있는 랍비 아카바·람바무와 랍비 메일 바알 하네스 등의 무덤을 찾고 있다. 유태교의 중심지로 번성하던 이 도시도 7세기 아랍인의 점령과 11세기 잇따른 지배로 전차 쇠퇴하였다.

 그 유명한 성경에 나오는 물고기의 맛을 보려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모스크와 십자군 성벽 유적지를 지나 호수가의 몰고기 식당으로 갔으나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식당을 구경만하고 나왔다. 갈릴리 호수에는 관광선이 관광객을 태우고 한바퀴 도는 상품도 있고, 멀리 호수 건너 요르단 땅을 가깝게 볼 수 있었다. 오후 1시 55분에 티베리아를 떠나 77번 도로를 타고, 나자렛으로 향했다.

 나자렛은 작은 언덕에 둘러 쌓인 도시이다. 이러한 작고 아무 특징이 없는 벽촌 마을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신약 성서에 나오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처녀 마리아가 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을 천사 가브리엘이 알리는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그의 남편 요셉과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생활을 시작했다. 예수는 전도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30년동안 이 도시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냈다. 기원 326년에 콘스타티누스 황제가 그의 어머니 헤레나의 부탁으로 마리아의 집터에 교회를 세웠다.

 

작은 언덕에 둘러싸인 도시 나사렛

나사렛의 수태 고지 교회

 

 수태 고지 교회를 찾아 가는 길에 차를 세우고 지나는 행인에게 손짓과 십자가를 표시하며 교회의 위치를 무르니, 저 멀리 보이는 언덕 밑으로 중심지의 검은 지붕의 있는 교회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겨우 교회 근처의 길가에 차를 세우고, 교회로 들어서니 본당 오른 쪽으로 회랑이 있고, 회랑의 벽을 따라 각국에서 보내온 성모 마리아의 초상이 걸려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한북을 곱게 입은 성모의 초상도 거려 있었다. 교회의 내부로 들어서니 외국의 단체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집터와 바위 굴을 돌아 보며, 성호를 긋기도 하고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것이 었다. 나도 성단으로 모셔진 동굴과 집터를 사진에 남기고, 오후 2시 35분에 나자렛에 와서 오후 3시 25분에 나자렛을 떠나 77번 도로를 따라 하이파로 향했다.

하이파의 시가지를 관통하다 길이 막혀서, 다시 해안 도로를 찾아 가다가 주유소에서 11.2ℓ의 휘발유를 보충하고 2번 도로를 타고 남아 하다 텔아비브에서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예르살렘 시내로 진입했는데, 하도 길이 막혀서 민박 집을 떠난 지 11시간 만인 오후 7시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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