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ICA기술실 시절

1959-1961

 

  1959년 4월 1일 처음 직장으로 산업은행 ICA주택기술실에 근무하게 되었다.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고 취직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은 은행등 몇 곳이어서 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사회 초년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주택 및 자금이 부족하여 ICA기금으로 주택 건설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은행의 부서에서 현장 기술지도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 직장에서의 첫 업무는 출근부에 출근 날인을 하는 것이었는데, 출근부를 뒤집어서 2장을 넘겨 날인을 했다.

입사동기가 여럿이 있었으나 나의 나이가 가장 적었고 여직원이 2명이 있었으므로 많은 직원 중 맨 뒤에서 세 번째가 나의 출근부였엇다. 그 후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아서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

공사관리 팀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현장을 수시로 나가서 기술지도를 하는데,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다니다 ICA자긍으로 수입한 영국제 렌드로바 2대와 독일 NSU의 스쿠터 2대가  들어 온 후로는 스쿠터를 타고 현장 답사를 하였다.

 

  1959년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정동학군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환송 기념 사진을 찍었다.

  정군은 서울공대 통신공학과(현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는데, 공대에 같이 다녀서 수시로 정군의 동숭동집에 놀러 갔었다. 당시 정군의 아버님은 서울공대 교수로 계셨으며 관사가 동숭동 대학본부뒤에 있어서, 서울공대에서 대학본부까지 왕래하는 학교버스를 타고 정군의 집에 놀러 가면,

 

 정군의 어머님께서 진아춘(進雅春)이라는 중국식당에서 자장면을 시켜 주셨는데, 그 맛이 어찌나 좋았는지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친구들과 그 식당에 찾아 가서 옛날을 생각하며 즐겨 먹었다. 1999년경 소나무길이라는 도로가 새로 나면서 건물의 반이 헐려서 그 건물에 다른 음식점이 들어섰다. 2001년경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건너편에 진아춘(進雅春)이 다시 문을 열었는데, 여전히 그 옛날 맛을 지니고 있어 지금도 옛날 진아춘(進雅春)을 그리는 고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나 또한 집사람과 같이 자주 들른다.

 

 

  1959년 가을, 산업은행 ICA주택기술실 직원 몇 이서 북한산으로 등산을 갔을 때의 사진인데, 사진에서 흰 바지를 입고 계신 조원근선배님께서 보관 중인 사진이다.

당시에는 등산을 하는 분들이 지금같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산 장비도 열악하여, 구두는 미군용 워커이고 버너는 미군용 휘발유 버너였음을 사진에서 알 수 있다.

사진에는 조원근 선배를 비롯하여 오른 쪽의 조성래 선배, 왼쪽의 임정 군이며 가운데의 휘발유 버너위의 코펠을 짖고 있는 나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 아마도 점심을 준비하는 중인 모양이다.

나의 사진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진은 이 사진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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