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1943-1949

 

  종로4가 나의 집은 굉장히 큰 한옥으로 종로통에서 남쪽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 막다른 오른 쪽 집이었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이 행랑방이고 그 다음에 중문, 오른쪽은 사랑채로의 출입문이고,중문을 들어서면 안 마당인데,  마당에는 장독대가있었다. 그 앞에서 우리 셋째,넷째 및 막내 형제들이 같이 찍은 사진인데 순진한 모습이 뚜렸이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1  국립과학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시절에 나는 당시 남산에 있었던 과학관에 자주 놀러 갔었다. 하루는 둘째 형님과 같이 과학관에 갔다가 우리 또래의 여러 학생들과 시비를 하게 되었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둘째 형이 자기의 혁대를 뽑아서 그것을 휘두르며 겁을 주어 학생들이 주춤 하는 사이에 손을 잡고 뛰어서 남산에서 종로4가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 올 수가 있었다.

그 둘째 형님께서는 효제초등학교, 용산중학교,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신 후 외국 회사에 근무하시던 중 불행히 폐암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한 쪽 폐를 절단하는 대 수술을 받으셨는데, 강인한 근성으로 병마를 이겨 내셔 몇 년 뒤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가, 큰 형님이 돌아가신 후에 귀국하시어 그 사업체를 인수, 현재 잘 운영하고 계시다. 둘째 형님의 나이는 나보다 네 살 위이다.

 

 

1943년 4월 1일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개교한 서울교동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4월 1일이 새 학기의 시작으로 나는 3월 4일 생이라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한 반에서 나의 나이는 항상 적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2반 때에는 축구를 잘 했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축구를 잘 가르쳐 주셨으며 나의 위치는 오른쪽 최종 수비수 였다. 다음해인 5학년 때에는 야구를 했는데 위치는 포수였다. 지금도 보관되어 있는 서울교동초등학교 나의 학적부에는 내가 축구와 야구를 좋아 했음을 담임 선생님께서 글로 남기고 계시다. 초등학교 5학년때 우리집 안채의 건너 방 창문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이다. 아버님께서 그 때에는 서예에 전념 중이시라, 학교에 제출하는 가정조사서에 아버님의 직업을 "서예가"라고 썼더니 어느 담임선생님은 "서예가"를 "간판쟁이"로 오해하시는 분도 계셨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2  만두

  부모님과 7남매가 한 집에서 살다 보니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특히 식사 문제는 반복되는 일상사 임에도 항상 시끌벅쩍하다. 우리 집에서는 자주 저녁식사로 만두를 만들었었는데, 그 때에는 온 식구가 동원되어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한다. 어머님께서 만두 반죽을 만들어 놓으시면,큰 식탁에 둘러 앉아 만두피를 밀어, 아버님을 비롯한 윗 분들이 어머님께서 맛있게 준비한 속을 가득 채워서 만두를 빚으셨는데, 그 크기가 한 입에 쏙 들어 갈 크기 이니,  한 끼에 만두를 최소한 200개 이상을 만들어, 큰 채반에 두 채반 가득 담아서 부엌의 무쇠 솥에서 끓여내어, 다시 그 채반에 가득 담아서 식탁에 올려 놓으면, 각자 앞 접시에 덜어서 준비한 초간장에 찍어 먹는데, 형제간에 만두 숫자를 세어가며 경쟁하듯이 실컷 먹었다.

  만두를 맛 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우리 집만의 자랑이었다. 웬만해서는 집에서 한 입에 쏙 들어 가는 작고 예쁜 만두를 해서 먹는 집이 많지 않았다. 저녁 식사에서 먹다 남은 만두는 다음 날 아침에 어머님께서 군만두로 만들어서 점심 도시락에 넣어 주시어,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면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 씩 집어가서 나는 겨우 두세 개 먹는 것이 고작이 였는데, 그래도 배가 고프지 않고 오히려 어머님이 준비해 주신 군만두에 자부심을 느꼈었다.

  한번은 저녁 식사로 만두를 하기로 한 날 모처럼 작은 누님께서 일찍 하교하여 혼자서 만두피를 먼저 밀어놓았는데, 막상 그 많은 만두피로 만두를 빚으려 하니 만두피가 서로 붙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다.작은 누님은 자기가 애쓴 보람이 없진 것이 분하여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집에서 만두를 만드는 데에는 만두피를 미는 것이 제일 힘이 든다. 지금은 만두피를 팔고 있어 만두를 집에서 만들어 먹기가 쉬워졌다. 나도 지금은 만두를 아주 예쁘게 빚어 먹는다.

 

교동초등학교 6학년 1반 시절 교생 실습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교사의 옥상에서 찍었는데, 오른 쪽에 담임이셨던 고성서 선생님이시고 왼 쪽에 교생이시다. 옛날 사진이라 한참 찾아야 친구들을 알아 볼 수 있다.

교동초등학교 제39회 졸업 앨범 사진이다. 6학년 1반 전원이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및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찍은 것이다. 당시 이규백 교장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교장선생님이 셨고, 고성서 담임선생님은 지금도 매월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언제나 이야기의 대상이 되시는 훌륭한 선생님이 셨다. 지금은 미국 시카고에 계시다고 한다. 1949년 6월 30일 교동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그 당시 중학교는 특차인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에 합격이 되어서 중학교 합격생 소집에 참석했다가 초등학교 졸업식에 거의 끝날 때에 참석을 했는데, 졸업식에 늦게 참석한 이유를 아신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최 선생님께서 나의 특차중학교 합격을 축하하며 아주 기뻐하셨다

교동초등학교 학적부(1,2,3학년의 성적이 있다)

초등학교 4,5,6학년의 성적

초등학교 학적부의 뒷면(인성, 신체, 출석 등이 있다.)

 

초등학교 6년 동알 6학년에만 1년 개근했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받아 본 우등상이다

 

교동 초등학교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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